| 한자 | 生育社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흑룡강성 하얼빈시 오상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 단체 |
|---|---|
| 설립자 | 김좌진|홍진|이청천 등 |
| 설립 시기/일시 | 1928년 7월 |
| 해체 시기/일시 | 1930년 7월 |
| 최초 설립지 | 북만주 빈강성 오상현 |
1920년대 후반 북만주 지방에서 활동하던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재만 한인 사회를 규합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한 비밀 결사 조직.
생육사는 농민들의 생산과 저축 등을 장려하여 생활을 안정시키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축적하려는 목적과 다방면의 항일 투쟁을 위한 인재 양성 등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활동 강령이나 주요 간부 구성원, 조직 및 상세한 활동내용 등을 기록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단체의 결성은 대다수 한인들의 생활이 어려워 효과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없었던 사정과 1920년대 후반 중국 동북지방(만주)에서 사회주의 계열 민족운동이 급격하게 고양되고 있던 사정을 배경으로 이루어 졌다. 특히 김좌진 등 신민부(新民府) 군정파(軍政派)와 김종진(金宗鎭)·이을규(李乙奎) 등 일부 무정부주의자들이 합세하여 1929년 7월 북만주 영안현(寧安縣)산시역전(山市驛前)에서 창립한 ‘한족 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족총연합회는 반공활동을 강화하고 김좌진 등 신민부 군정파 출신 인사들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한편, 농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농민 자치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30년 1월 생육사의 주요 간부였던 김좌진이 공산주의자에 의해 피살되었다. 이에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같은 해 7월 북만주 중동선(中東線) 철도 연변의 위하현(葦河縣)에서 생육사를 주도했던 홍진과 이청천, 황학수·이장령 등이 재만 ‘한국 독립당’을 창건하였다. 이 때 한족 총연합회와 함께 한국독립당 조직에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