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滿洲 朝鮮 視察團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친일단체 |
|---|---|
| 설립자 | 조선 총독부 |
| 설립 시기/일시 | 1917년 |
| 해체 시기/일시 | 1929년 |
| 최초 설립지 | 길림성 혼춘 |
1917년에서 1929년까지 만주 지역의 한인 사회에서 친일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활동한 단체.
일제는 북간도 한인 사회에서 1917년부터 1929년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296명에게 조선의 행정·교육·위생·산업·금융·교통 시설을 시찰하고 관광시켰다. 그리고 조선 총독부는 ‘시찰단’의 경비로 매번 2천 원 정도를 지원하였고, 일본 영사관은 조선인거류민회 임원을 중심으로 한인 사회의 유력자를 시찰단원으로 선정하였다.
1918년 4월 일제는 혼춘 지역 한인 사회에서 조선 민 공회(朝鮮民 公會)의 영향력을 확대할 목적으로 회장 김명호를 단장으로 하는 경성 시찰단을 조직하였다. 20명으로 구성된 경성 시찰단은 조선 총독부의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4월 28일부터 5월 11일까지 서울·영등포·수원·인천 등지를 견학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이들 시찰단에 많은 배려를 베풀었다. 먼저 조선우선회사와 조선철도에서 시찰단원의 선박표와 기차표를 할인하여 주었다. 그리고 서울에 도착해서는 먼저 자작(子爵) 조중응을 중심으로 300여 명이 참여한 시찰단 환영회를 개최하였고, 경복궁 경회루에서 조선 총독부 문무 관원들이 대거 참여한 성대한 환영회를 개최하였다.
이들이 시찰한 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울에서는 총독부·경무총감부·상품진열관·조선은행·경성우편국·매일신보·동양척식주식회사·제생원 맹아부·창경원·중앙시험장, 능동공립보통학교·여자고등보통학교·경성고등보통학교와 부속보통학교·동아연초회사·용산병영·용산 철도국 공장·경성감옥·경복궁 박물관·조선피혁주식회사를, 인천에서는 인천부청·축항·관측소를, 수원에서는 원잠종제조장·농림학교·권업모범장·도자혜의원을 시찰하였다. 즉 식민지 조선의 행정·산업·교육·군사·문화 시설을 보여줘서 ‘조선의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
1921년에 일본영사관은 용정촌 조선인 거류민회가 발기하는 형식을 빌어 북간도 지역 각 조선인거류민회장과 한인 사회의 유지 37명이 참여한 간도 시찰단을 조직하였다. 7월 19일부터 8월 15일까지 약 28일간의 일정으로 조선을 시찰하였다.
이때도 조선 총독부에서는 이들을 환대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7월 23일 조선 총독부 내무국과 경기도청, 경성부 관리들, 그리고 대정친목회와 상인조합원들도 동원되어 마중나왔다. 다음으로 25일에는 조선총독이 직접 주최하는 환영회를 열었고, 31일에는 경복궁경회루에서 경기도 지사와 경찰부장을 비롯한 일제 관료와 친일파의 거두인 이완용 등 160여 명이 참석한 환영회도 개최하였다.
간도시찰단이 방문한 곳은 남산공원 상품진열소·총독부·경성우편국·조선은행·총독부 의원(醫院) 및 의학전문학교·연초전매공장·동양척식주식회사·파고다 공원·공업전문학교·중앙시험소·경기도 제사장·제생원맹아부·경성감옥·용사20사단·만철경성관리국·경복궁·고등보통학교와 부속보통학교·창덕궁·비원 동식물원 등이다. 앞서 1918년에 방문한 시찰단과 비슷하게 조선의 행정·산업·교육·군사·문화 시설을 살펴보았다.
특히 간도시찰단은 ‘경신 참변’ 직후에 조직된 것이 특징이다. 즉 경신 참변 이후 북간도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한 일제가 북간도 한인 사회에 대한 회유책으로 간도시찰단을 조직한 것이다. 그래서 조선총독이 직접 환영하고, 대정친목회, 이완용 등 친일단체와 친일파를 앞장세웠으며, 기간도 이전에 비하여 약 2배인 28일간이나 잡은 것이다.
일제는 간도 시찰단을 통해 북간도 한인 사회의 민심을 회유하고, 친일파들에게는 특혜를 베풀어 한인 사회에서 친일 기반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