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룡 학교

한자 興龍 學校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시거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민족 교육 기관
설립자 이주 한인
개교 시기/일시 1910년대 초반
특기 사항 시기/일시 연합 운동회
최초 설립지 집안현 시거우
정의

1910년대 초반 집안현 이주 한인들이 시거우에서 신구 학문을 절충을 위해 설립한 민족 교육 기관.

교육 목표(교훈 포함)

흥룡 학교를 비롯한 민족 교육 기관은 근대성과 아울러 강렬한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 최종적인 목표는 민족 독립과 조국광복을 위한 투철한 항일 정신으로 무장한 독립군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학교는 지식을 습득하는 단순한 교육 장소 차원을 넘어 배일사상 중심지, 반일 운동 책원지로서 반일 무장 투쟁을 위한 정신적·대중적인 관계망을 구축하는 원동력이었다.

변천

초기 집안현 지역 교육 기관은 개량식 서당이거나 사숙 형태로 된 것이 적지 않았다. 근대 교육에 대한 인식 변화와 더불어 흥룡 학교도 설립되는 계기를 맞았다. 운영비는 주민들 의연금이나 교육비로 충당되었다. 화룡현 덕신사 영암촌의 덕흥 의숙의 연 비용은 200원인데 전부가 학부형들이 푼돈을 모은 것이며 개태사 호천포의 청호 학교(淸湖學校)는 1912년 9월에 설립되었는데 운영비용 364원도 학부형들이 부담했다. 이밖에 대성학교, 연길현 용신사의 제동 학교(濟東學校), 지송사 유신촌의 영실 학교(英實), 상의향의 영생 학교(永生) 등과 집안현신성 학교, 통화현의 신흥학교, 무송현의 구산 학교(勾山), 동녕현광진 학교(光震) 등은 농민들로부터 의연금 혹은 의연 곡식을 모아서 꾸려진 학교이다.

교육 활동

유지 비용은 각 학교마다 조금씩 상이하다. 대부분은 학부형들이 부담하는데 높은 교육열은 마을마다 개량 서당이나 사립 학교를 설립하였다. 집안현 이주 한인의 교육 비용은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되는 바 총 교육 비용은 4,194원으로서 세대당 20원에 달했다.

교과목은 한문·한글·산술·독서·습자·역사·지리·수신·창가·체조 등으로 편성되었다. 학제는 4년제로 운영되었으나 진급 시험 등을 통하여 월반하는 등 개인별 능력을 중시하였다. 한글과 역사 교육은 항일 정신을 배양하는 체조는 상무 정신을 고취시키는 한편 강인한 체력 연마를 위하여 매우 중시된 과목이다. 군사 훈련을 방불케 하는 병식체조는 불굴의 저항 정신을 일깨우는 계기였다. 이는 한인 사회 구성원의 경쟁적으로 참여하는 등 대동 단결을 도모하는 생활 현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교가와 상징물

교가나 상징물은 거의 없었다. 당시 널리 성행하던 창가인 「애국가」·「학도가」·「모험맹진가」·「운동가」·「부모 은덕가」·「단심가」·「국혼가」 등은 교가처럼 인식되었다. 특히 경술국치 이후 체육과 창가는 매우 중요한 교과목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현황

1914년 당시 교장은 임해운, 교원은 박창준이었다. 교원에 대한 임금은 1년에 옥수수 5.1섬과 현금 5원이 지급되었다. 생도수는 14명으로 교사는 독립적인 건물을 마련하였다. 운영비는 주민들 의연금으로 충당되었으나 만성적인 재정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참고문헌
  • 김종국 외, 『중국 조선족사 연구』1(서울대 출판부, 1996)
  • 주성화, 『중국 조선족 이주 사진첩』 1 (한국 학술 정보, 2009)
  • 류병호, 「이주 초기의 조선족 교육」, (『중국 조선 민족 발자취 총서 1-개척』, 민족 출판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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