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中語 學校 |
|---|---|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중국어 전문교육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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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자 | 간성문|호운호 |
| 개교 시기/일시 | 1913년 2월 |
| 최초 설립지 | 장백현 현성 |
1913년 2월 중국인 간성문과 호운호가 중국어 보급과 한인 학령 아동 구제를 위하여 장백현에 설립한 중국어 전문 교육 기관.
중어 학교의 교직원이나 재학생 수에 있어 일부 변화가 있었으나 커다란 차이는 없다. 이후 이주 한인 증가와 근대교육에 대한 인식 변화는 학생 증가로 이어졌다. 다만 일제의 탄압과 경제적인 곤궁 등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성향은 점차 쇠퇴하는 분위기였다. 1915년 모든 한인학교에 필수과목으로 편성된 중국어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이념이 확산되자 성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약화되었다.
중어 학교에 교가는 없었으나 당시 성행한 창가를 널리 애창하였다. 각종 학교행사나 체육시간에 애창된 「복수회포가」 등은 이를 반증한다. 조국을 빼앗긴 망국한과 실의를 노래하면서 조국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는데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 일제와 싸워서 이를 물리치자는 도전적인 용기와 기백을 보여주자는 의미심장한 가사이다. 당시 창가교육은 청소년들에게 백절불굴의 항일의식과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1915년 당시 중어 학교의 설립자 겸 교장은 간성문과 교사 호운호였다. 주요 과목은 중국어·지리·역사·이과·산술·작문·창가·도화·한문·한글·습자 등이었으며 학생 수는 20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