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正理 學校 |
|---|---|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유하현 삼원포진 만리구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민족 교육 기관 |
|---|---|
| 설립자 | 왕삼덕 등 신민회 계열의 이주한인 |
| 개교 시기/일시 | 1910년대 초반 |
| 최초 설립지 | 유하현 삼원포 만리구 |
1910년대 초반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만리구에서 왕삼덕 등 신민회 계열의 이주 한인들이 설립한 중등 민족 교육 기관.
신민회의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 일환으로 설립된 정리 학교는 민지계발(民智啓發)과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독립군 양성에 있었다. 체육시간이나 연합 대운동회에서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훈련과 각종 경기 종목은 이를 반증한다.
1914년 7월 16일 당시 정리 학교에는 교원 2명과 재학생 50여 명이 있었다. 교장 겸 설립자는 왕삼덕, 교원은 이찬 등이었다. 왕덕삼은 학교 설립을 계기로 신흥학교와 노동야학을 운영하는 등 민지계발과 군사교육에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는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전쟁론에 입각한 독립운동 노선을 견지했다.
시기에 따라 정리 학교의 교직원이나 재학생 수에 있어 일부 변화가 있었으나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일제의 탄압과 경제적인 곤궁 등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성향은 점차 쇠퇴해 갔다.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 일환으로 설립된 유하현 지역 민족 교육 기관들은 항일의식 고취에 전력을 기울였다. 민족정체성 정립과 백절불굴의 저항정신을 일깨우려는 민족교육은 국어·역사·지리와 군사훈련에 버금가는 체육교육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1914년 6월 25일부터 3일간 이시영 주재 하에 연합 대운동회를 합니하대동 중학교에서 개최하였다. 통화·유하·흥경·환인현에 소재한 15개 중학교와 소학교 생도 500여 명 참석했다. 이는 한인사회 단결을 도모하는 동시에 정정당당한 경쟁심을 유발하였다. 또한 배일사상을 고취시키는 창가교육은 이곳 교육활동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리 학교에 교가는 없었으나 당시 성행한 창가를 널리 애창하였다. 유하현에 설립된 민족 교육 기관 대부분은 이러한 분위기였다. 애창된 「혈성대 창가」나 「종성당 애국가」 주요 가사는 다음과 같다.
「혈성대 창가」
제1절 신대한의 독립의 소리 끓는 피와 같이 우렁차다
일단의 혈성 우리 동지들은 종성당(鐘醒黨)을 조직하고
조국을 회복할 것을 굳게 맹약하였다.
제2절 비참한 조국이여 건국의 영사(英士)들이 태어났다
의기있는 우리 청년들은 목숨을 다 바쳐 빛내리라
산은 막을 수 있어도 우리들의 의기는 막을 수 없으리
제3절 높이솟은 백두산 소나무 경성당의 무대되고
삼천리 금수강산 종소리에 공명한다
이 천만 우리 동지 우리는 소리에 깨어난다
제4절 깨어 일어난 독립군의 의용(義勇)의 검 날카롭다
웅장충천(雄將衝天)의 형세 그 누가 막을 것인가
조국회복을 위한 종성당원 그 활기 더욱 새롭구나
제5절 영세 독립 한국은 종성아래 다시 세우자
험한 풍우 낙뢰 중에 굳게 팔쾌 정하고
장하도다 종성당의 그 공훈
「종성당의 애국가」
사천년 전 신조(神助)께서 내려주신 나라, 오백년 역사를 지닌 예의국
삼천리 강산에 악풍폭우 몰아쳐, 밝고 빛나는 햇살 가리우고
웅장한 저 종소리 아래서 깨어난 걸사(傑士)들은 혈성대를 조직하였다.
동방에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날, 고유한 옛 강산에 밝은 햇살 비추이고
수 년간의 깊은 잠속에서 깨어나지 못하여 무리한 왜적이 침입하였다.
깨어나라 이천만 민중의 우리동포들이여, 자유의 맑은 종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중략)…
우리의 독립가는 육주(六州)에 퍼져 울리고
종성당의 만세소리가 오래도록 파도처럼 용솟음친다.
조국 광복을 위한 독립정신 고취와 젊은 청년들의 용감한 투쟁정신을 강조하는 등 독립에 대한 열망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이외에 창가를 배포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