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양 소학교

한자 恩養 小學校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길림성 통화시 유하현 삼원포 대화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개신교 계통 민족 교육 기관
설립자 방기전|안동식|이호림|김세택
개교 시기/일시 1912년
폐교 시기/일시 1920년 9월
특기 사항 시기/일시 경신대토벌
최초 설립지 유하현 삼원포 대화사
정의

1912년 서간도 유하현 대화사에 설립된 개신교계 민족 교육 기관.

교육 목표(교훈 포함)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 일환으로 신민회의 이시영·이회영 일가와 안동 혁신유림 이상룡·김대략·김동삼 등은 유하현으로 망명하였다.

이들은 이주 한인 권익옹호와 대동단결을 위한 자치단체인 경학사를 조직했다. 이어 독립군 양성을 위한 신흥강습소를 설립하는 등 중장기적인 독립전쟁을 실천에 옮겼다. 1912년 흉년으로 이주 한인들은 경제적인 곤경에 처하여 자제들 교육을 방기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삼원 포교회방기전 장로는 안동식·이호림·김세택 등과 상의하여 학교설립기성회를 조직한 후 교회 내에 은양학교를 설립했다. 목적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변천

은양 소학교의 개교 초기 학생 수는 남학생 200명과 여학생 170명에 달하는 대규모였다. 이주 한인 증가와 더불어 1915년에는 새로 부임한 한경희 목사가 제2대 교장을 맡았다. 증가하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이듬해에는 교회당 옆 산록에 단층기와집 교사를 신축하여 800여 명을 수용하였다. 1920년 9월 경신년 대토벌 당시 일본군은 교회와 학교를 소각하는 한편 방기전 장로와 안동식 등을 살해하였다. 이를 계기로 은양학교는 폐교되고 말았다.

교육 활동

은양 소학교는 그 설립과 동시에 교육 내실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1916년 학교 증축과 동시에 운동장을 만들어 상무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체육교육을 강화하였다. 축구와 군사훈련은 물론 양편으로 조를 편성하여 고지 쟁탈전을 벌이는 등 실전과 같은 독립전쟁을 펼쳤다. 체육교사 이희로는 학생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같이하는 열성을 보였다 학제도 6년 과정으로 편성하여 장차 한인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양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교사들은 교재를 직접 만들어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동시에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국어·역사·지리·수신 교육 등을 통한 자긍심 고취는 항일의식을 북돋우는 계기였다.

교가와 상징물

은양 소학교는 개신교계 민족 교육 기관으로서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었다. 성경은 교과목 중 필수 과목이었으며 찬송가를 교가로 널리 애창하는 분위기였다.

현황

은양 소학교의 초대 교장은 방기전 장로, 제2대 교장은 한경희 목사였다. 초기 학생은 370여 명이었으나 이후 800여 명으로 급증하였다. 교사로 재직한 사람 중 현재까지 파악되는 이들은 허영백·한선옥·김학규·장태일·김덕근·강흥락·조성규·권녕하·김병희·이휘로·이용갑과 중국인 1명 등이었다. 중국인 교사는 열성적인 중국어 교수는 물론 이주 한인과 현지 중국인과 가교적인 역할에 충실하였다.

참고문헌
  • 『滿洲及 서백리아지방에 있어서 조선인사정』 (조선총독부, 1923)
  • 중국조선민족교육과학연구소, 『중국조선족학교지』(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8)
  • 류병호, 「이주초기의 조선족교육」(『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1-개척』 민족출판사, 1999)
  • 『독립신문』 (1919. 9. 13)
  • 『매일신보』 (1921. 2. 14)
  • 일본 외무성, 「柳河縣地方 朝鮮人에 관한 調査進達의 건(機密公 제21호)」,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6)』(1917),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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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외무성, 「西間島地方 不逞鮮人 狀況에 관한 건(機密公 제70호)」,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8)』(1920),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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