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元倧 學校 |
|---|---|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흥도자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종교계 민족학교 |
|---|---|
| 설립자 | 김중건 |
| 개교 시기/일시 | 1915년 |
| 최초 설립지 | 안도현 흥도자 |
원종(元宗)의 창시자인 김중건(金中建)[1889~1933]이 1915년 간도의 안도현 홍도자에 설립한 종교계 민족 교육 기관.
원종 학교는 원종 사상의 구현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농장·정부·학교 등이 삼위일체가 되는 대공화주의(大共和主義)를 표방하였다. 나아가 다복식정책(多福式政策)인 농촌주의운동을 통해 만민이 평등한 새로운 사회질서에 부응하는 인물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종교주의에 입각한 이상사회 건설을 표방한 원종 학교는 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교육 내실화를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1915년 일제는 중국과 만몽조약(滿蒙條約)을 체결하고 북간도 지역 한인들에 대한 탄압과 감시를 한층 강화하였다. 이로 인해 근거지와 원종 학교를 장백현 덕수동으로 옮겨야 했다. 게다가 김중건은 불온분자로서 치안에 위험하다는 이유로 안도현 지사에 의해 추방당했다. 이후 그는 중국 관헌과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각처로 이동하였다. 1924년 당시 학교의 교장은 박희영(朴凞永), 학감은 김동훈(金東勳)이었으며, 교사는 운동국(尹東國)·유윤권(劉允權)·강동욱(康東郁)·권상보(權尙甫) 등이었다. 지도자 양성을 위한 원종 중학교 건설도 모색되었다.
입학 자격에 있어서는 연령이나 성별에 구분을 두지 않았다. 교육 내용도 일정한 능력에 따라 진행되었다. 교장인 김중건은 한글을 종서에서 횡서로 고쳐 쓰고 자모음 결합도 숫자적 조합방식으로 쉽게 익히고 배우도록 하였다. 병농일치에 의한 학과 운영으로 6개월 만에 교육과정을 수료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름에는 학생들이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사냥을 하거나 숯을 굽는 등 철저하게 일상생활과의 연계 속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이후 원종교단은 도전학원·덕수학원·건원학원·왕가학원·이도구학원·팡광포학원 등을 각지에 설립·운영하는 등 한인사회의 민지계발과 이상촌 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