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聖英 學校 |
|---|---|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통화현 대항도하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민족 교육 기관 |
|---|---|
| 설립자 | 이주 한인 |
| 개교 시기/일시 | 1913년 2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4년 |
| 최초 설립지 | 통화현 대항도하 |
1910년대 초반 통화현 대항도하에 정착한 이주 한인들이 설립한 민족 교육 기관.
성영 학교를 비롯한 민족 교육 기관은 근대성과 아울러 강렬한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 최종적인 목표는 민족독립과 조국광복을 위한 투철한 항일정신으로 무장한 독립군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학교는 지식을 습득하는 단순한 교육장소 차원을 넘어 배일사상 중심지, 반일운동 책원지로서 반일 무장 투쟁을 위한 정신적·대중적인 관계망을 구축하는 원동력이었다.
유지 비용은 각 학교마다 조금씩 달랐으며, 대부분은 학부형들이 부담하였다. 이러한 높은 교육열은 마을마다 개량서당이나 사립학교의 설립 배경이 되었다. 통화현 이주한인의 교육비 부담은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서, 총 교육비용은 4,194원으로서 세대 당 20원에 달했다. 교과목은 한문·한글·산술·독서·습자·역사·지리·수신·창가·체조 등으로 편성되었다. 학제는 4년제로 운영되었으나 진급시험 등을 통하여 월반하는 등 개인별 능력을 중시하였다. 성경과 사서오경 등도 병행하는 등 신구 학문을 절충했다. 특히 한글과 역사 교육은 항일정신을 배양하는 과목이었다. 체조는 상무정신을 고취시키는 한편 강인한 체력연마를 위하여 매우 중시된 과목이다. 군사훈련을 방불케 하는 병식체조는 불굴의 저항정신을 일깨우는 계기였다. 이는 한인사회 구성원의 경쟁적으로 참여하는 등 대동단결을 도모하는 생활 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성영 학교에 교가나 상징물은 거의 없었다. 당시 널리 성행하던 창가인 「애국가」·「학도가」·「모험맹진가」·「운동가」·「부모은덕가」·「단심가」·「국혼가」 등은 교가처럼 인식되었다. 특히 경술국치 이후 체육과 창가는 매우 중요한 교과목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14년 당시 성영 학교의 설립자 겸 운영자는 홍대현, 교원은 송대국이었다. 생도 수는 57명에 달할 만큼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운영비는 주민들 의연금으로 충당되었다. 빈곤한 학생에 대한 기숙사와 주식 제공은 교육열 고조와 아울러 향학열로 이어졌다. 강렬한 반일주의는 학생들에게 민족문제를 새삼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