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성재

한자 樂聖齋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초두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개량 서당
설립자 이주 한인
개교 시기/일시 대한제국시기
특기 사항 시기/일시 연합운동회
최초 설립지 집안현 초두구
정의

한말 집안현 초두구에 이주 한인들이 청소년 민지계발(民智啓發)을 위하여 설립한 개량 서당.

교육 목표(교훈 포함)

을사늑약 이후 국망(國亡)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 장기적인 국권회복을 위하여 중국 동북지역이나 러시아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하는 한인이 증가하였다. 압록강이나 두만강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인사회는 정착과 동시에 청나라 관헌의 부당한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시세 변화에 부응하여 이들은 의숙·사숙(義塾·私塾)과 같은 전통 교육기관에서 벗어나 신·구학문을 절충한 개량 서당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그 목적은 한인사회 단결을 도모하는 동시에 민족의식을 일깨우려는 의도였다. 나아가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장차 다가올 독립전쟁에 대비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변천

개량서당으로 시작된 낙성재는 한말 집안현 초두구에 이주한 한인들이 설립한 민족교육 기관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근대적인 교육기관인 동흥 학교·경흥 학교 등의 교세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따라 흥룡재일신재 등은 인근 사립학교로 통합되었다. 낙성재도 이와 같은 변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교육 활동

교과목은 『천자문』·『명심보감』·『소학』 등과 간단한 한글·산술·독서·습자·역사·지리·수신·창가·체조 등으로 편성되었다. 학제는 규정되지 않아 개인별 능력에 따라 운영하였다. 한글과 역사 교육은 항일정신을 배양하는 과목이다. 체조는 상무정신을 고취시키는 한편 강인한 체력연마를 위하여 매우 중시된 과목이다. 군사훈련을 방불케 하는 병식체조는 불굴의 저항정신을 일깨우는 계기였다. 특히 봄·가을 정기적으로 개최된 연합대운동회는 정정당당한 경쟁심과 상호간 협력의 중요성을 체험하는 현장교육이었다.

교가

교가는 달리 없었다. 다만 당시 널리 성행하던 창가인 「애국가」·「학도가」·「모험맹진가」·「운동가」·「부모은덕가」·「단심가」·「국혼가」 등이 교가처럼 인식되었다.

운영

1914년 당시 훈장은 변일화, 생도수는 5명에 불과한 마을 서당이었다. 교사는 마을회관을 이용하였다. 운영비는 주민들 의연금으로 충당되었으나 만성적인 재정난에 직면하고 있었다.

참고문헌
  • 류병호, 「이조초기의 조선족교육」(『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1-개척』,민족출판사, 1999)
  • 일본 외무성, 「在外朝鮮人 經營學校書堂一覽表 送付에 관한 건(朝憲機 제582호)」,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6)』(1916),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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