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景興 學校 |
|---|---|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지거우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민족 교육 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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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자 | 이주 한인 |
| 개교 시기/일시 | 1910년대 초반 |
| 최초 설립지 | 집안현 시거우 |
1910년대 초반 집안현 지거우에 정착한 이주 한인들이 설립한 민족 교육 기관.
경흥 학교를 비롯한 민족 교육 기관은 근대성과 아울러 강렬한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 최종적인 목표는 민족 독립과 조국 광복을 위한 투철한 항일 정신으로 무장한 독립군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학교는 지식을 습득하는 단순한 교육 장소 차원을 넘어 배일 사상 중심지, 반일 운동의 책원지로서 반일 무장 투쟁을 위한 정신적·대중적인 관계망을 구축하는 원동력이었다.
1914년 당시 교장은 이용빈, 교원은 김충삼이었다. 교원에 대한 임금은 1년에 잡곡 5.9섬을 지급하였다. 생도수는 7명으로 아주 소규모인 마을 학교였다. 운영비는 주민들의 의연금으로 충당되었으나 만성적인 재정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초기 집안현 지역의 교육 기관은 개량식 서당이거나 사숙 형태로 된 것이 많았다. 근대교육에 대한 인식 변화와 더불어 경흥 학교도 설립되었다. 경흥 의숙의 운영비는 주민들 의연금이나 교육비로 충당되었다. 화룡현 덕신사 영암촌에 있는 덕흥 의숙의 연간 운영 비용은 200원이었는데 전부가 학부형들이 푼돈을 모은 것이며 개태사 호천포의 청호 학교(淸湖學校)는 1912년 9월에 설립되었는데 이곳의 운영 비용 364원도 학부형들이 부담한 것이었다. 이밖에 대성학교, 연길현 용신사의 제동 학교(濟東學校), 지송사 유신촌의 영실 학교(英實學校), 상의향의 영생 학교(永生學校) 등과 집안현신성 학교, 통화현의 신흥학교, 무송현의 구산 학교(勾山學校), 동녕현의 광진 학교(光震學校) 등은 모두 농민들로부터 의연금 혹은 의연 곡식을 모아서 설립된 학교이다.
학교의 유지 비용은 각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을 학부형들이 부담했다. 조선 민족의 높은 교육열로 인해 마을마다 개량 서당이나 사립 학교가 설립되었다. 집안현 이주 한인의 교육 비용은 생활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항목이었다. 총 교육 비용은 4,194원으로서 세대당 20원에 달했다.
교과목은 한문·한글·산술·독서·습자·역사·지리·수신·창가·체조 등으로 편성되었다. 학제는 4년제로 운영되었으나 진급시험 등을 통하여 월반하는 등 개인별 능력을 중시하였다. 한글과 역사 교육은 항일 정신을 배양하는 과목이다. 체조는 상무 정신을 고취시키는 한편 강인한 체력 연마를 위하여 매우 중시된 과목이다. 군사 훈련을 방불케 하는 병식 체조는 불굴의 저항 정신을 일깨우는 계기였다. 이는 한인 사회 구성원의 경쟁적으로 참여하는 등 대동 단결을 도모하는 생활의 현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교가는 따로 없었다. 다만 당시 널리 성행하던 창가인 「애국가」·「학도가」·「모험맹진가」·「운동가」·「부모은덕가」·「단심가」·「국혼가」 등이 교가처럼 인식되었다. 특히 경술국치 이후 체육과 창가는 매우 중요한 교과목으로 자리매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