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재

한자 敬義齋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하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개량 서당
설립자 이학도
개교 시기/일시 1914년
최초 설립지 길림성 집안시 하동
정의

한말 집안현 하동에 이주한 한인들이 시세 변화에 부응하여 신구 학문을 절충하여 설립한 개량 서당.

교육 목표(교훈 포함)

을사늑약 이후 국망(國亡)에 대한 위기 의식은 점점 고조되어가는 가운데 장기적인 국권 회복을 꾀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중국 동북 지역이나 러시아연해주 지역으로의 망명이 증가하였다. 압록강이나 두만강 대안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인사회는 정착과 동시에 청나라 관헌의 부당한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시세 변화에 부응하여 이들은 의숙·사숙과 같은 전통 교육 기관에서 벗어나 신·구학문을 절충한 개량 서당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한인 사회 단결을 도모하는 동시에 민족 의식을 일깨우려는 의도였다. 나아가 항일 의식을 고양시키는 등 장차 다가올 독립 전쟁에 대비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운영

1914년 설립 당시 경의재는 설립자 겸 훈장 이학도와 8명의 생도만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마을 서당이었다. 그리고 교사는 마을 회관을 이용하였다. 운영비는 주민들의 의연금(義捐金)으로 충당되었으나 만성적인 재정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변천

개량 서당으로 시작된 경의재는 1910년대 초반 집안현 하동에 거주하는 한인 사회 민족 교육 기관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지역사회에서 근대적인 교육 기관인 예수교 학교·경흥 학교 등 학교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따라 경의재도 인근 사립 학교로 통합되었다.

교육 활동

경의재의 교과목은 『천자문』·『명심보감』·『소학』 등과 간단한 한글·산술·독서·습자·역사·지리·수신·창가·체조 등으로 편성되었다. 학제는 규정되지 않아 개인별 능력에 따라 운영하였다. 한글과 역사 교육은 항일 정신을 배양하는 과목이다. 체조는 상무정신을 고취시키는 한편 강인한 체력 연마를 위하여 매우 중시된 과목이다. 군사훈련을 방불케 하는 병식 체조는 불굴의 저항정신을 일깨우는 계기였다. 특히 봄·가을 정기적으로 개최된 연합 대운동회는 정정당당한 경쟁심과 상호간 협력의 중요성을 체험하는 현장 교육이었다. 한인사회 구성원의 경쟁적인 참여는 대동단결을 도모하는 계기였다.

교가

교가는 달리 없었다. 다만 당시 널리 성행하던 창가인 「애국가」·「학도가」·「모험맹진가」·「운동가」·「부모은덕가」·「단심가」·「국혼가」 등이 교가처럼 인식되었다.

참고문헌
  • 류병호, 「이조 초기의 조선족 교육」(『중국 조선 민족 발자취 총서 1-개척』 민족 출판사, 1999)
  • 日本 外務省, 「在外 朝鮮人 經營 學校 書堂一覽表 送付에 관한 건(朝憲機 제582호)」,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6)』(1916), 국가 보훈처 공훈 전자 사료관 (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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