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梅河口市 第2 中學校 |
|---|---|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매하구시 산성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학교 |
|---|---|
| 설립자 | 김종|김일홍|김남수 |
| 개교 시기/일시 | 1947년 6월 |
| 개칭 시기/일시 | 1985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4년 |
| 최초 설립지 | 길림성 매하구시 산성진 |
| 현 소재지 | 길림성 매하구시 산성진 |
길림성 매하구시 산성진에 있던 조선족 중학교.
매하구시 제2 중학교의 교육 목표는 학생들에게 도전정신과 민족적 자긍심을 키워줌으로써 재능과 끼를 갖추고 민족의 전통과 미덕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것이었다.
매하구시 제2 중학교는 1947년 11월 설립되었다. 당시 요령성 민주 동맹 주임이강이 파견한 김종, 김일홍(이홍광 지대 정치부), 김남수 등이 원 해룡현 민맹조직위원회차정연과 당 지부의 지지 하에 설립한 조선족 중학교이다. 교명은 해룡현 조선인민 해산 중학교였다. 당시 책임자는 김종이었고, 학생은 90명, 교사는 3명이었다. 학교의 목표는 신민주주의를 위해 복무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1950년 학교 당 지부가 건립되었고 그해 10월 신민주주의 청년단 총지위원회가 건립되었다. 김소묵이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13학급 학생 497명, 교사 38명이었다. 1954년 교명을 해룡현 제2 초급 중학, 1958년 고중부를 설치로 완전 중학이 되면서 해룡현 제2 중학교로 개칭하였다. 1966년에는 학생 1,000명, 교사 70여 명으로 확대되어 지구에서 가장 큰 민족 중학교로 되었다. 1978년에 고중부가 제11중학교에 통합되었고 평등 학교의 초중부 등이 편입되면서 초급 중학교로 변하였다. 1985년 4월 해룡 2중은 매하구시 제2 중학으로 명명되었다. 그해 10월 본교에 매하구시 조선족 고급 직업 중학교가 설립되었다. 1988년 해룡 사범 조선족반이 설립되면서 본교는 1교 3제(一校三制)의 종합성 학교로 부상하였다.
매하구시 제2 중학교는 1954년 해룡현을 대표하여 단동시에서 열린 전성 운동회에서 단체 2등의 성적을 내었다. 이뿐만 아니라 씨름과 중거리 달리기 선수를 발굴·양성해 국가에 진출시켰다. 1960년대 초 200무 규모의 농업기지를 마련, 500㎡의 교실을 지었으며 목공장, 양계장 등을 경영하여 자금난을 해결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뇌봉 소조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어 그 사적이 성· 시 신문에 보도되기도 하였고, 예술 인재들을 계속 성급 문예 단체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교사관리 우수 학교, 근공검학 우수 학교, 푸르른 교정 학교로 평가되었다. 1988년 3,070㎡의 교사를 짓고, 컴퓨터, 시청각 시설, 어학실습실, 음악실, 무용실, 미술실, 도서 열람실을 잇따라 마련하였다. 또한 자동차 전문반, 유아교육 전문반, 미술, 외사복무, 컴퓨터 등 직업 전문반을 꾸려 인재들을 사회에 진출시켰다.
1995년 6월 성 소수 민족 직업 교육 좌담회를 개최하였다. 성급 초중 표준화 학교, 실험실 표준학교, 예술 전통 학교, 가장 아름다운 학교, 시청각 교수 실험 학교, 시 선진 공청단 지부위원회 모범 학교, 정신문명 학교, 선진 당 지부 등 수많은 영예를 지니고 있다.
1998년 당시 매하구시 제2 중학교의 학교장은 권길만이었고, 학교 규모는 학생 714명(남 315명, 여 399명), 교직원 86명(남 43명, 여 43명)이었다. 당시 학교의 건축 면적은 7,900㎡이었다. 소장 도서 총수는 12,000권(한글본 2,400권, 중국어본 9,600권)이었다.
2008년 3월 매하구시 조선족 중학교에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