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輝南縣 團林鎭 永新 小學校 |
|---|---|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휘남현 고집강진 일광촌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학교 |
|---|---|
| 개교 시기/일시 | 1947년 |
| 개칭 시기/일시 | 2003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3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2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9년 |
| 최초 설립지 | 길림성 통화시 휘남현 고집강진 일광촌 |
| 현 소재지 | 길림성 통화시 휘남현 고집강진 일광촌 |
길림성 통화시 휘남현 고집강진 일광촌에 있던 조선족 소학교.
휘남현 고집강진 일광 소학교에서는 ‘성실, 건강, 단결’을 학생들의 기본 미덕으로 간주하고 조선족의 문자와 언어를 사랑하고 민족의 문화와 전통 미덕을 계승한 어린이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휘남현 고집강진 일광 소학교는 1947년에 한족들과 함께 민족 연합 학교로 설립되었다. 당시 학교 명칭은 용산포 학교였다. 설립 초기 학교장은 박원장이었고 조선인 학생은 약 130명이었으며 교사 3명이었다. 1950년부터 학생이 증가하면서 완전 소학교로 발전하였는데 학생은 약 200명이었으며 교사는 6명이었다.
1957년에 학교 교사를 새로 짓고 학교 명칭을 휘남현 흥덕 조선족 중심 학교로 개칭하였다. 이때 교장은 임성조였고 학생은 약 280명이었는데 신성촌에 분교까지 두었다. 1962년부터 학생은 350명을 초과하였으며 교사는 18명이었다. 문화 대혁명 전까지 규모가 현 내에서 제일 큰 조선족 중심 소학교로서 모든 면에서 인근의 한족 학교를 능가하였다. 10년 문화 대혁명 후기에 두 개 학교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 후 1969년에 새 교사를 지었고 1970년부터 1983년까지 초급 중학반을 운영하였다.
휘남현 고집강진 일광 소학교는 개혁개방 이후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 학부모들의 인식이 점차 바뀌게 되면서 학생 수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교수 개혁과 교수 연구에 최선을 다하고 교수 질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실천을 하였다. 시급과 성급의 우수 교과 선생님도 다수 배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학교의 환경건설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교수설비를 잘 갖추어 1983년에는 성급 아름다운 학교, 1992년에 현급 표준화 학교로 선정되었다.
개교 이래 1998년 당시까지 총 55회에 걸쳐 졸업생 1,433명을 배출하였다.
휘남현 고집강진 일광 소학교는 1998년 당시 학교 규모는 학생 97명에 교직원 13명이 있었다. 당시 학교의 건축 면적은 765㎡이었고 소장 도서 총수는 1,100권이었다.
2003년에 한인[조선족] 인구의 감소에 따라 휘남현의 조선족 중소학교를 9년 일관제인 휘남현 조선족 학교로 통합하면서 휘남현 고집강진 일광 소학교는 폐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