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通化縣 四棚鄉 華鮮 小學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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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통화현 사붕향 화선촌 |
| 시대 | 현대/현대 |
| 개교 시기/일시 | 1946년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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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교 시기/일시 | 2000년대 |
| 개칭 시기/일시 | 1959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0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5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2년 |
| 현 소재지 | 길림성 통화시 통화현 사붕향 화선촌 |
길림성(吉林省) 통화현(通化縣) 사붕향(四棚鄉) 화선촌(華鮮村)에 있던 조선족 소학교.
통화현 사붕향 화선 소학교에서는 조선족의 우수한 자질과 미덕을 갖춘 소박하고 씩씩하며 밝은 전면 발달한 학생을 양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통화현 사붕향 화선 소학교는 1946년 봄에 촌민들의 지원으로 민영 학교로 설립되었다. 그리고 1950년에 국가의 인정을 받아 공립으로 발전하였다. 설립 초기 학교명은 납자하(砬子下) 소학교였다. 1955년부터는 차령배(車嶺揹) 소학교와 통합하여 한족 학교의 조선족반으로 운영되었다.
그 후 1959년 봄부터는 한족 학교에서 분립하여 다시 독립적인 조선족 학교로 운영하게 되면서 화선 소학교로 개칭했다. 1960년부터는 완전 소학교로 발전하여 그 해 7월에 제1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당시 제1대 교장을 처음 임명하였는데 최규성이었고 학생은 69명이였다. 1972년부터는 3년간 중학반을 설치 및 운영하였다. 그 후 교원의 부족으로 고생을 하다가 1984년에 소수 민족 학교의 교원 편제가 늘어 교원이 12명으로 되었다.
통화현 사붕향 화선 소학교는 1950년대 대약진 운동과 1960년대~1970년대의 10년에 걸친 문화 대혁명 속에서도 시종일관 정상적인 교수 활동을 지속하면서 학생들의 실질적인 교육에 치중하였다. 교육 개혁을 적극 추진하여 교원 자질 향상에 초점을 둠으로써 꾸준히 교수의 질을 향상시켰다. 당시 화선 소학교의 교학 능력은 여러모로 인정을 받았다. 통화현 한인[조선족] 학생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석사생을 배출했고, 통화시 한인[조선족] 교육계 역사상 첫 북경 대학 입학생도 화선 소학교 출신이었다.
통화현 사붕향 화선 소학교는 1998년 당시 김영철 교장이 재임했으며, 학생 84명(남 43명, 여 41명)과 학전 학생 14명에 교직원은 11명(남 7명, 여 4명)이었다. 건축 면적은 416㎡이고, 도서 총수는 468권(한글 286권, 한문 182권)이었다. 화선 소학교는 2000년대 이후 조선족 학교들의 통폐합 추세에 따라 폐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