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舒蘭市 平安鎭 新光 朝鮮族 小學校 |
|---|---|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길림시 서란시 평안진 신광촌 |
| 시대 | 현대/현대 |
| 개교 시기/일시 | 19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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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시기/일시 | 1957년 |
| 이전 시기/일시 | 1962년 7월 |
| 개칭 시기/일시 | 1946년 |
| 현 소재지 | 길림성 서란시 평안진 신광촌 |
길림성(吉林省) 서란시(舒蘭市) 평안진(平安鎭) 신광촌(新光村)에 있던 조선족 소학교.
서란시 평안진 신광 조선족 소학교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도덕 품성 교양을 갖추고, 조선족 전통 미덕을 체득함은 물론 문화지식과 이중 언어를 동시에 연마한 훌륭한 민족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서란시 평안진 신광 조선족 소학교는 1940년에 황강둔에 설립되었던 일본 개척단 자녀 학교로부터 시작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에 빈하 중농 협회에서 조선족 초급 소학교를 다시 세웠는데, 그 때 학교 규모는 학생 38명, 교사 4명이었다. 1957년 황강둔에 있던 학교를 풍덕둔으로 옮기고 신발촌 초급 소학교로 개칭하였다. 당시 교장은 박석규였고, 학교 규모는 교사 5명, 학생 85명이었다.
1962년 7월에는 또 마을 사람들의 요구와 정부의 지시에 따라 학교를 다시 신광둔으로 옮기고 신광촌 조선족 소학교라고 하였다. 학교는 교사 8명, 학생 139명의 전일제 완전 소학교로 운영하였다. 그 뒤 1977년부터 1980년까지 한 때는 초급 중학반까지 운영하였다. 특히 그 당시에는 전교 320명 학생들을 무료로 3년간 학습시켰으며, 교사들의 급여를 학교 공장의 수입에서 지불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하였다.
1998년 당시 서란시 평안진 신광 조선족 소학교의 교장은 강만춘이었다. 학교 규모는 학생 126명[남 72명, 여 54명], 교직원 12명[남 5명, 여 7명]이었다. 학교의 건축 면적은 900㎡이었고, 소장 도서 총수는 1,442권[한글 1,082권, 한문 360권]이었다. 개교 이후 1998년까지 총 35회에 걸쳐 졸업생 853명을 배출하였지만 조선족 학교들의 통폐합 추세에 따라 폐교되었다.
서란시 평안진 신광 조선족 소학교에서는 개혁개방 이래 교사들의 자질과 교수의 질을 지속적으로 높여 왔다. 특히 교육과 생산노동의 결합을 상시화 하여 1995년에 길림시 교육위원회로부터 노동교육 목표 도달학교란 칭호를 받았다. 또한 1990년부터 세 차례나 서란시 1급 목표 도달 학교, 1996년에는 서란시 시범 학교로 명명되었다. 동시에 신광촌은 서란시 정부로부터 존사중교 선진 마을로 표창을 받았다.
1981년에는 공청단 중앙, 국가 체육위원회, 국가 교육부로부터 체육 선진 학교로 명명되었다. 1991년 2월 당시 5학년 정성룡 학생이 목숨으로 두 학생을 구한 영웅적 행동이 각 지역 신문 잡지에 실렸다. 공청단 중앙에서 전국 우수 소선대원의 칭호를 수여하였으며, 길림성 공청단 위원회에서는 성 우수 소선대원의 칭호를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