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蛟河市 拉法鎮 先鋒 朝鮮族 小學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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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문화·교육/교육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길림시 교하시 나법진 |
| 시대 | 현대/현대 |
| 개교 시기/일시 | 1969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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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교하시 나법진 선봉촌에 있던 조선족 소학교.
교하시 나법진 선봉 조선족 소학교의 교육 목표는 사상과 성품이 바르고 문화 지식을 잘 갖춘 조선족의 미래 지식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생들로 하여금 민족의 미풍양속을 계승하여 예절바른 어린이로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다.
교하시 나법진 선봉 조선족 소학교는 원래 교하시 조선족 실험 소학교에 통합되어 있었다. 1969년 5월에 정식으로 교하시 조선족 실험 소학교에서 분립하여 새로운 학교를 설립하였다. 당시 교명은 선봉 조선족 소학교였고, 제1대 교장은 임찬오이고, 학생 218명, 교사 15명이었다. 그 후 지속적인 발전을 거쳐 1976년에는 학교 규모가 학생 305명, 교사 17명에 달하였다.
교하시 나법진 선봉 조선족 소학교는 교사들의 자질 향상을 가장 우선으로 중요시하여 왔다. 그리하여 우선 자질 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을 바로잡고 교사들의 이론 수준을 부단히 제고시켜 두드러진 효과를 거두었다. “5애(五愛), 즉 조국을 사랑하고 인민을 사랑하고 노동을 사랑하고 과학을 사랑하고 공공재물을 사랑하자”를 교육의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예의 교양과 향토 교재 학습을 잘 결합시켜 민족의 미풍양속을 계승하여 예절바른 어린이로 자라게끔 교양하였다. 그 후 지속적인 교사와 학생들의 노력으로 선봉 조선족 소학교는 교하시의 일류 학교가 되었다. 선봉 조선족 소학교는 개교 후 1998년까지 총 27회에 걸쳐 졸업생 834명을 배출하였다.
1998년 당시 교하시 나법진 선봉 조선족 소학교의 교장은 김영수였다. 학생은 140명이었는데, 그 중 남학생 66명, 여학생 74명이었으며, 교직원은 총 16명으로 남 3명, 여 13명이었다. 건축 면적은 1,456㎡이었고, 소장 도서 총수는 1,500권인데 그 중 한국어 도서 1200권, 중국어 도서 300권이었다. 교하시 나법진 선봉 조선족 소학교는 2000년대 이후 조선족 학교들의 통폐합 추세에 따라 폐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