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조선족 아리랑의 변천과 조선족

한자 朝鮮族 아리랑의 變遷과 朝鮮族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조선족 아리랑의 존재 현황

중국 현지 한인들에게 「아리랑」은 마음의 고향을 상징하는 노래인 동시에 역사의 노래이다. 1882년 이후 조국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두만강을 건너 희망의 개척지 청나라(중국)으로 이주 할 때부터 일제 강점기에 강제 이주(1931-1945년)를 당할 때와 만주 벌판에서 민족 독립운동을 할 때에도 「독립군 아리랑」을 부르며 살아왔다. 1940년대에는 조국과 조선인의 어려운 역경을 기쁨으로 승화시 「기쁨의 아리랑」을 불렀으며,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후에는 또 다른 희망의 「새 아리랑」을 지어 부르며 중국 한인[조선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지키고 「아리랑」 노래의 맥을 이어 왔다.

한인[조선족]은 1950년 초부터 민요 발굴을 시작하여 1954년 『조선 민요곡집』을 출판하였고, 1961년 연변 민간 문예 연구소를 설립하여 전통 음악 민족 유산을 수집·정리하였다. 1966년부터 1976년 문화 대혁명 시기에는 한인[조선족] 민족 예술의 침체기를 맞기도 했다. 1979년 연변조선족자치주 문화국 민간 음악조에서 발간한 『가요 집성』에는 230편의 민요가 수록되었고, 이중 「아리랑」, 「양강랑 아리랑」, 「충청 아리랑」 등 9곡이 수록되었다. 1981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한 『민요 집성』에는 총 661의 민요가 수록되었고, 이 가운데 30편의 아리랑 노래가 수록되었다. 1982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한 『민요곡집』에는 356편의 민요가 실려 있는데, 「삼아리랑」, 「양강 아리랑」, 「충청도 아리랑」 등 19곡의 아리랑이 수록되었다. 2008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김봉관이 편저한 『중국 조선족 민간 음악집』에는 총 1,000곡의 민간 가요가 수록되었고 이 중 56곡의 아리랑이 수록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아리랑 노래를 분석해 보면 1950〜60년대 북한에서 채록되었던 노래로 「아리랑」(나운규의 영화 주제가)외 이 곡에서 파생되거나 변종된 9곡, 「강원도 아리랑」, 「구아리랑」, 「삼일포 아리랑」, 「서도 아리랑」, 「영천 아리랑」, 「밀양 아리랑」, 「진도아리랑」, 「해주 아리랑」, 「단천 아리랑」, 「신아리랑」 등이며, 한인을 대상으로 새롭게 채록된 노래는 「강남 아리랑」, 「용정 긴 아리」, 「량강낭 아리랑」, 「아리 아리 뎅데」, 「삼아리랑」, 「기쁨의 아리랑」, 「충청도 아리랑」, 「청주 아리랑」 등이 있다.

연변에서는 해방 전 주로 함경도 민요를 불렀지만, 1950년 중반부터는 남도 민요를 점차 많이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팔도 민요를 포괄적으로 부르고 있다. 2013년 현재 한인들은 나운규의 영화 주제곡인 「아리랑」을 가장 많이 부르고 있다. 이 곡은 1992년 「통일 아리랑」에 가사를 붙여 남북한 동포들과 해외 동포들이 모두 함께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2007년에 출판된 『연변 가요 방송 700수』에는 1940년대 아리랑 노래로 「새아리랑」(허세록 작곡, 채택용 작사, 1948), 1990년대 아리랑 창작곡으로는 「새아리랑」(최삼명 작곡, 이상각 작사), 「타향의 아리랑」(황철정 작사, 성기화 작곡), 2000년대 이후에는 「두만강 아리랑」(김승길 작사, 박설화 작곡), 「장백송」(김학천 작사, 장천일 작곡), 「장백 아리랑」(김태현 작사, 최용운 작곡), 「장백의 메아리」(허춘림·김철학 작사, 허춘림 작곡)를 수록하였다. 그 외에 「장백 가요」, 「청산리 아리랑」(유춘선 작곡, 박규철 작사) 등의 「아리랑」이 유행하고 있다. 2005년 작곡된 「귀향 아리랑」(리동춘·허동규 작사, 허동규 작곡)은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 동포들이 「귀향 아리랑」을 불러 공연장인 서울장충 체육관 장내를 숙연케 하였다. 2008년 연변 출판사에서 출판한 『중국 조선족 민간 음악집』에는 1,000여 곡의 민간 음악이 수록되었는데 이중에 51개의 아리랑 곡이 수록되어 있다. 51곡 중에 이황훈이 채보한 「강남 아리랑」은 안기영의 「강남 아리랑」과 다른 기존 아리랑에서 파생된 변종의 신곡이며, 「고성 아리랑」은 「시집살이」 노래를 5/8박자 아리랑 가락에 붙인 것이다. 「용강 긴 아리」(김봉관 채보)는 아리랑 선율과는 달리 음폭이 상당히 넓고 창작곡에 가까운 곡이다. 「떼목 아리랑」은 「고성 아리랑」과 유사한 선율을 사용한 곡이다. 「양강낭 아리랑」, 「삼아리랑」은 한인[조선족]이 전승한 창작 아리랑 곡이다. 「어랑 타령」을 아리랑 노래로 분류한 것은 사랑의 노래로 존재했던 잡가 계통의 「어랑 타령」이 아리랑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조선족 아리랑은 남한과 북한에 존재하는 아리랑 곡들 외에도 새로운 아리랑 곡들이 계속 창작되어 불리우고 있다.

조선족 아리랑의 원형과 변천

수집된 북한의 아리랑 노래와 해외 지역, 구 소련 지역에서 채록한 아리랑 노래를 분석한 결과 헐버트(H. B. Hulbert)가 1896년에 채록한 「아라렁(Ararung)」과 「아리랑 타령」은 나운규의 영화 주제곡인 「아리랑」에 음악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보 1번 「아라렁」은 19세기 말에 조선에서 불리던 통속가요로 함경도 지역에서 주로 부르던 어랑 타령 계통의 창작 가요이다.

서양 음악의 영향으로 C장조(다장조)의 sol mode와 같이 채록되었지만, G장조로 볼 경우에는 (E/la-D/sol-C/fa-A/re-G/do) 오음계가 종지음이 ‘도’음으로 마치는 곡이다. 이 곡은 최초의 창가식 민요(서양 음악의 영향을 받은 민요), 즉 신민요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에 조선인들의 생활을 최초로 소개한 이사벨라(Isabella L. Bird)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의 집 문 밖에서 장구 소리와 「아리랑」을 부르는 소리가 많이 들렸고 아리랑의 가사가 782절이나 된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이사벨라는 이 책에서 그 당시 조선에 선교사로 온 헐버트가 채록한 「아라렁」 노래를 소개하였는데, 이 기록은 「아리랑」의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또한 20세기 초기에 불린 「평양 아리랑」 또는 「서도 아리랑」은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음악 이전에 부르던 「아라렁」, 「아르렁 타령」 노래의 변종으로 생긴 노래이다. 19세기말 각 지역마다 「아리랑」이 유행하여, 평안남도에서는 「신 아르래기」, 황해도의 「긴 아르래기」는 양산도 장단(9/8박자)에 가사의 내용은 서정적이고 세속적인 내용의 이별을 노래했다. 1920년 초에 북간도 지역인 용정의 명동학교를 다녔던 나운규가 이 아리랑 곡조를 들었고, 나운규가 부탁한 실명 미상의 작곡가에 의해 「아리랑」 영화의 주제곡으로 재구성할 때, 당시에 부르던 「아라렁」, 「아리랑 타령」과 가장 유사한 곡으로 작곡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악보 2번은 「아령 아리랑」, 또는 「신아리랑」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노래는 한인[조선족]과 구 소련 지역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에 의해 전승되어 온 아리랑이다. 1926년 이전의 아리랑과 구분하여 후세 연구자들이 가사를 바뀐 옛 아리랑을 「신아리랑」으로 지칭한 것이다.

악보 2 「아령 아리랑」

(후렴) 아령 아령 아라리요 아리랑 뛰어라 앞으로만 나가자

(1) 남산 앞에 장충단을 짓고 받들어 총만 하자

(2) 울며 울며 기다려만 다고 승전고 울리고 내가 돌아오리

이 노래는 아직도 한인[조선족]과 고려인들이 기억하며 부르고 있다. 사할린 동포 음악가 전두한이 부른 「아령 아리랑」 선율은 1921년 『조선 신구 잡가』에 처음으로 소개된 「강원도 아리랑 타령」과 같은 곡이다. 이 곡은 미국의 선교사 헐버트(H. B. Hulbert)가 채록한 선율과 거의 같은 곡임을 알 수 있다. 악보 1번(마디 9-16)은 악보 2번(마디 1-8)과 유사하다. 8마디의 선율을 2번 반복해 부르면서 선율을 조금 바꾸었다.

악보 3 「아리랑 타령」

악보 3번 「아리랑 타령」은 「아리랑」(1926)에 가까운 노래이다. 즉 (re-do-La Sol) 음조직이 자주 쓰이며 「아리랑」(1926) 후렴구의 주요 선율과 비슷하다. 「아리랑 타령」의 후렴을 부르고 앞 절을 부르면 「아리랑」(1926)과 비슷한 선율이 된다.

악보 4 「평양 아리랑」

악보 4번 「평양 아리랑」은 「아리랑 타령」과 앞의 8마디와 뒤의 8마디를 바꾸어 부른 것이다. 그래서 1926년 「아리랑」에 더 유사한 곡이라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북한, 고려인, 조선족의 아리랑 선율을 분석해 본 결과 「아르렁」-「아리랑 타령」-「본조 아리랑」으로 선율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르렁」과 「아리랑 타령」은 사할린 동포 전두한의 노래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아르렁」은 「아령 아리랑」(전두한 노래, 김보희 채보), 「강원도 아리랑」(열라는 콩팥은 아니열고 아지랑이 동백은 왜 열리느냐 아령 아리렁 아라리오 아리랑 얼시구 노다노다 가세)으로 고려인에게 전승되었고, 한인[조선족] 동포에게는 「아랑 아리랑」이라는 노래로 전승되었다.

「아리랑」(1926)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문전의 옥토는 다 어디가고 보따리 신세가 웬일이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신아리랑」 2, 「함경도 아리랑」과 「밀양 아리랑」

악보 5 「신아리랑」 2

악보 5번 「신아리랑」 2의 구성음은 (Sol)-La-de-re-mi-sol-la이며 (re-do-La-Sol) 선율은 8번이나 반복된다. 시작음은 la음이며 하행 선율 구조로 이루어진 것이 이 곡의 특징이다. 리듬 구조를 살펴보면 󰁕(부점)이 있는 리듬을 사용하는데, 이는 「밀양 아리랑」의 리듬과 유사하다. 이 노래는 「밀양 아리랑」 보다 먼저 작곡된 것이므로 「밀양 아리랑」에 영향을 준 곡이다.

조선족이 부른 역사의 노래 아리랑

조선족 아리랑 노래의 특징은 한국의 아리랑 노래에 비하여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는 노래가 많다. 이주 역사, 독립운동에 관한 아리랑, 1949년 이후에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내 고향을 찬양하는 아리랑, 중화 사상을 찬양하는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1910년에서 1920년 사이에 부른 「신아리랑」은 『중국 조선족 문학사』에서 인용되었으나 곡조없이 가사만 기록되어 있다. 민요 「북간도」와 「신아리랑」은 이주 시기의 어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두 곡은 지금까지 전승되어 온 「아리랑」의 가사 내용을 포함하고 후렴구의 3·3·4조 운율이 같은 점으로 미루어 서로 같은 곡조에 가사를 붙였다는 것을 추정 할 수 있다.

또한 “문전옥답 다 빼앗기고 거지 생활(쪽배기) 생활이 웬말이냐”는 가사는 후세에도 「아리랑」 노래에 계속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아리랑」은 「아리랑 타령」과 비슷한 운율을 가진 곡으로 현재 구 소련 지역의 고려인들이 많이 부르던 노래이다. 지역적으로 가까이 위치한 러시아연해주 지역의 한인과 만주 지역의 한인들은 자신들의 조국의 노래인 아리랑을 함께 부른 것이다.

「신아리랑」

① 산천초목 젊어가고 인간의 청춘은 늙어만 간다

② 성황당 까마귀 깍깍 우는데 인간의 청춘은 늙어만 간다

③ 무산자 누구냐 탄식마라 부귀와 빈천은 돌고 돈다

④ 밭 잃고 집 잃은 동포들아 어디로 가야만 좋을까 보냐

⑤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를 넘어간다

⑥ 감발을 하고서 백두산 넘어 북간도 벌판을 달려보세

⑦ 아버지 어머니 어서오소 북간도 벌판이 넓어 좋소

⑧ 원수로구나 원수로구나 총 없는 맨손이 원수로 구나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 곡은 일제 강점기에 수탈을 피해 북간도 지역으로 이주한 동포들의 심정을 「아리랑」 노래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가사를 보아서는 1910년대 북간도 지역에서 불리던 노래로 추정되나, 음악의 후렴구로 보아서는 1926년 이후에 가사를 붙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북간도 지역은 독립운동의 발상지로 「광복군 아리랑」(김학규 작사), 「독립군 아리랑」, 「혁명의 아리랑」, 「기쁨의 아리랑」 등 역사 현실을 반영한 아리랑 노래들이 창작되었다. 「광복군 아리랑」은 「밀양 아리랑」에 새로운 가사를 얹어 불렀다.

「독립군 아리랑」 가사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 났네 독립군 아리랑 불러를 보세

① 이조왕 말년에 왜 난이 났니 이천만 동포들 살길이 없네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 났네 독립군 아리랑 불러를 보세

② 일어나 씨우자 총칼을 메고 일제놈 쳐부셔 조국을 찾자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 났네 독립군 아리랑 불러를 보세

③ 내고향 산천아 너 잘 있거라 이내몸 독립군 떠나를 간다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 났네 독립군 아리랑 불러를 보세

④ 부모님 처자들 이별을 하고서 왜놈들 짖부숴 승리를 하자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 났네 독립군 아리랑 불러를 보세

⑤ 태극기 휘날려 만세 만만세 승전고 울리며 돌아오리라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 났네 독립군 아리랑 불러를 보세

구 소련에서 살다 훈춘으로 이주한 뒤 작고한 오병렬(사망시 연령 86세)에게서 배웠다는 「독립 아리랑」은 구 소련은 물론 중국에서도 많이 불렸다. 한국에서 채록된 「광복군 아리랑」은 「밀양 아리랑」의 곡조를 사용했으나 구 소련에서는 5/8박자의 「영천 아리랑」과 「본조 아리랑」이 합쳐진 선율을 차용하여 노래했음을 알 수 있다. 「독립군 아리랑」 음계는 (Sol-La-do-re-mi)로 「본조 아리랑」과 같은 음계를 사용하고 종지음도 do이다. 그러나 「영천 아리랑」에서 쓰이는 리듬, 즉 5/8박자의 리듬을 사용했다. 이와 같이 아리랑 선율과 리듬은 해외에서 각 지방에서 모인 한인들의 음악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조선족 창작 아리랑

(1) 1940년대 말 허세록이 작곡한 「새아리랑」은 3/4박자로, 1920년 「아리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선율로 작곡되었다. 반면에 최삼명 작곡 「새 아리랑」은 대중 가요풍으로 작곡된 노래이다. 이는 아리랑 노래가 보다 대중적인 노래가 되고, 가수들에 의해 대중에게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2) 조선족 아리랑 중에서 일본 음악의 영향을 받은 아리랑은 다음의 2가지 현상이 함께 일어난다. 첫 번째는 2박자 계통의 뽕짝 리듬(트로트 리듬)이고 두 번째 음악적 현상은 서양 음계의 사용으로 종지음의 변화이다. 한국의 전통 민요는 종지음이 (라)음으로 끝나는 계면조(라-도-레-미-솔)와 (솔)로 끝나는 평조(솔-라-도-레-미l)의 선율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이전에 서양의 선교사들로부터 소개된 서양 음악의 영향은 일제 강점기에도 조선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일본 영향을 받아 2박자 계통의 뽕짝 리듬을 사용한 「타향 아리랑」은 유행가풍으로 작곡된 아리랑이다. 1992년 중국과 남한과의 교류가 시작된 이후에 한국에서 금영 노래방 기기가 한인[조선족]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유행하는 「아리랑」이 한인[조선족]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국이나 사할린 동포들은 아직도 일본식의 뽕짝 리듬을 트로트라는 장르로 분류하여 계속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1960-70년대에 유행한 「아리랑 낭낭」(김교성 작곡), 「아리랑 목동」(박춘석 작곡), 「아리랑 총각」(반야월 작사, 이봉룡 작곡), 「아리랑 이별고개」(송운선 작곡) 등의 노래는 일본 영향을 받은 2박자 계통의 노래로 유행가풍의 아리랑이다.

(3) 중국의 영향으로 새로 생긴 아리랑은 중국어와 한글로 노래를 하는 「장백송」, 「장백 아리랑」은 가곡풍의 아리랑으로 전문 가수들에 의해 노래 부르게 작곡되었다. 한국의 아리랑과 중국풍의 선율과 리듬이 혼합하여 중국인에게도 친숙하게 들리는 혼종의 아리랑이 탄생 되었다.

(4) 1990년대에 새롭게 창작된 중국의 조선족 아리랑 노래 가사에서 백두산을 주제로 하는 아리랑이 유행하였다. 또한 한인[조선족]에게 있어 제2의 고향인 연변을 찬양하는 악보 8번「연변 아리랑」, 「흑룡강 아리랑」 등 한인[조선족]이 살고 있는 지역을 지칭하는 아리랑 노래가 많이 나오게 된 것은 과거에 지역마다 특징이 있는 아리랑을 부르던 습관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의의 및 평가

한국인과 중국의 한인[조선족]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한 민족이다. 19세기 말에 생긴 근대 가요인 아리랑의 음악적 분석으로 「아리랑」의 파생 관계를 연구하고 조선족 아리랑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중국 조선족 민간 음악집』에 수록된 56곡의 아리랑을 분석해보면, 1945년 이전 부르던 조선인의 아리랑 노래는 주로 1950년대에 북한에서 채록된 아리랑들이 많다. 1999년 북한에서 『조선민족 음악 전집』을 출판하였는데, (민요편) 3권에 50곡의 아리랑이 수록되어 있다. 50곡의 아리랑 노래 중에 「단천 아리랑」, 「해주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경상도 아리랑」, 「고성 아리랑」, 「구아리랑」, 「긴 아리랑」, 「삼일포 아리랑」, 「서도 아리랑」, 「신아리랑」, 「나운규 영화주제가 아리랑」 등은 북한에서 채록된 아리랑과 같은 아리랑이다. 그러나 「강남 아리랑」, 「양강낭 아리랑」, 「삼아리랑」, 「아리아리 댕댕」과 「어랑 타령」은 한인[조선족]이 옛 아리랑 선율에서 파생시킨 변종의 아리랑 곡이다. 「어랑 타령」을 아리랑에 포함시킨 것은 초기 아리랑의 파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 주제곡 「아리랑」은 「평양 아리랑」, 「서도 아리랑」과 같은 종류의 선율을 사용하였고 4분 음표 3박자를 사용하여 서양 음악의 영향으로 생긴 근대 가요이다.

「충청도 아리랑」, 「청주 아리랑」은 기존의 충청도 지방에서 불린 아리랑에 「시집살이」 노래에 아리랑 후렴구를 사용하여 변형된 아리랑을 만들어 부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구 소련 고려인에게서도 나타난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문화 대혁명 시기에 한인[조선족]의 아리랑은 거의 창작되지 못하였다. 1990년대 한인[조선족] 창작 아리랑에 나타난 특징은 일본과 중국 음악의 영향을 받아 대중 가요풍의 아리랑인 「타향의 아리랑」과 중국 음악의 영향에 따라 4/4박자로 장엄하게 부르는 「장백송」, 「장백 아리랑」, 「장백의 메아리」, 「두만강 아리랑」이 작곡되었다. 2000년 이후에 한인[조선족]의 아리랑에서 ‘백두산’이 중요한 아리랑을 노래하는 기표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특징이다.

1990년대 이후 나운규의 영화 주제가 「아리랑」은 「통일 아리랑」으로 승화되어 조국의 한인들과 함께 한인[조선족]들도 「애국가」 같이 「아리랑」을 부르게 되었다. 1990년 중반 이후 한국에서 연변 지역으로 노래방 기기를 수출하게 되어 한인[조선족]이 한국 유행가풍의 「아리랑 낭낭」, 「아리랑 목동」, 「강원도 아리랑」을 즐겨 부르게 되었다.

한국인들의 아리랑은 문화 보전의 입장을 지키려는 보수적 경향을 가졌고 「정선 아리랑」과 같이 토속 민요를 보존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대중 가요, 서양 클래식 음악 같은 다양한 음악 장르의 아리랑 작곡이 유행하고 있다. 반면에 한인[조선족]의 아리랑은 역사성, 지역성, 문화 융합 현상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의 창작 아리랑 곡이 19세기 말에 창작된 아리랑들과 함께 전승되고 있다. 조선족 아리랑에 나타난 음악적 성격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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