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학춤」

한자 朝鮮族 학춤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무용과 민속극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무용
형식구분 2인무∼군무
주요등장인물 김재산
공연자/보유자 김재산, 김정훈
비물질문화유산등급및지정번호 제2차 국가급 무형 문화 유산(2009)
형성 시기/일시 1952년
연행 시기/일시 1986년
비물질 문화유산 지정 일시 2009년
초연|시연장 안도현 만보향(安圖縣萬寶鄉, 지금의 만보진)
공연장 전주
공연장 안도현
제작 단체 안도현 만보 공사 금강 대대
정의

김재산이 전승하고 김정훈이 수집하여 재현한 학 모양의 탈을 쓰고 학의 활동을 모방하는 춤.

개설

학 모양의 탈을 쓰고 날새의 움직임을 재치 있게 무용화한 춤이다. 『악학궤범』과 『정재무도홀기』에 근거하여 「학춤」은 고려 시기부터 조선 말기까지 궁정 의식에서 추던 춤이라고 정리하였다. 조선족의 「학춤」은 궁정 의식에 사용되던 전통적인 「학춤」의 보법과 동작을 기초로 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1982년 3월, 안도현 만보공사 금강대대에서 예인 김재산에 의해 전승된 「학춤」을 김정훈이 수집하여 1983년에 재현했다. 김재산은 1890년 3월 27일에 강원도 금강의 한 예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능을 익혔는데, 1936년 3월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와서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다. 낮에는 들에 나가서 일하고, 밤에는 동네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전통춤을 전수했다고 한다. 1952년 문예 경연 대회에 출전했고, 1959년에는 전주 민간 예인 경연 대회에 참가하여 당시 자치주 주장인 주덕해의 접견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구성 및 형식

「조선족 학춤」을 전승시킨 김재산에 의하면, 처음 마을에서 「학춤」을 출 때에는 흰 옷을 입고, 초신을 신고, 흰 부채를 만들어 학의 날개로 사용하며 춤추었다고 한다. 이후 1952년에 문예 경연 대회에 나갈 때는 철사를 사용해서 학의 몸체를 만들고, 목은 둥근 나무 막대기에 스프링 철사를 감아서 몸체에 붙이고, 솜과 천으로 학의 얼굴을 만들어 마분지로 주둥이를 붙이는 등 학의 외형을 실감나게 제작했다. 그리고 학이 한가로이 거니는 모습, 부리로 물고기를 쪼는 시늉, 몸과 날개를 흔드는 모습 등의 표현을 형식화하고 구성하였다. 김재산은 이런 「학춤」을 통해 향토애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내용

「학춤」은 학의 특성과 동작에 비추어 무용 언어를 다듬었기에 춤 동작이 실감날 뿐만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우아하다. 학의 외형적 모습을 연출했는데 예를 들면, 미인송 아래에 잠든 학과 초병인양 그 뒤에서 한 다리를 들고 선 학. 새 아침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고향 산천에서 나래 치며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마저 애틋하게 봐주는 학, 껑충 걸음을 하며 부리로 땅을 쪼기도 하고, 부리를 땅에다 이리저리 닦기도 하는 학, 천지의 맑은 물에 깨끗한 제 모습에 때가 묻지 않았나 비춰보는 학, 애무하는 듯, 위로하는 듯 목과 목을 교차하고 흔들다가 마주섰다 물러서서 부리로 깃을 다듬는 학, 물고기를 낚아 고기를 가지고 재롱부리는 학의 순서로 춤사위 전반을 짰다고 한다.

연행 시기 및 관련 의례

무대 공연으로 연행되어 일정한 연행 시기가 없다. 조선 시대에는 사신연, 양로연, 진연과 나례에서 연행되었다.

현황

안도현(安圖縣)에서 부터 계승된 전통춤인 「학무」는 그 예술성이 뛰어나 2009년, 제2차 국가급 무형 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름 없는 한 민간 예인에 의해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학춤」이 심심산골에 뿌리내려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조선족 학춤」은 학의 형상을 빌어 그들의 향토애를 표현하고 전달하려 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참고문헌
  • 김정훈, 『중국 조선족 민속춤과 민속 놀이』(북경 민족 출판사, 2010)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