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錦河村 集團 部落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역사/근현대 |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 지역 |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집단 부락 |
|---|---|
| 가구수 | 60가구 |
| 개설 시기/일시 | 1937년 |
1937년 만척 주식 회사에서 일본인 나리다를 파견하여 금하촌에 만든 집단 부락.
금하촌 집단 부락 사람들은 해마다 소처럼 일을 해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빚은 오히려 늘어만 갔었다. 일부 사람들이 참을 수 없어 도주하려 했지만, 마을 네귀에는 포대(炮台)가 설치되어 있고, 마을 중간에 세워진 망루에서는 자위대가 밤낮으로 보초를 서면서 마을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어 도저히 도주할 수 없었다. 잘못하면 자위대실로 끌려가 심한 고초를 겪어야 했었다. 집단 부락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하기보다 죄인들을 가두어 놓는 집중영이라 하는 것이 더 알맞다고 당시 사람들은 말했었다.
만척 주식 회사는 1937년에 일본인 나리다를 파견하여 금하촌에 마을 건설을 계획하였다. 강제로 한인을 모집하여 나무와 잡초들을 제거하고 목재 등 건축 재료들을 실어다 집단 부락을 건설하였다.
금하촌 집단 부락은 살림 집 60채, 망원대 하나, 자위대 사무실 하나, 우물 6개, 연자 방앗간 4개로 구성되었고, 마을 주위에 토성을 쌓고 동, 서, 남쪽으로는 대문을 만들었다.
살림집은 4칸으로 지어 두 집씩 들었다. 천정이 없는 서까래 집으로 벽은 새 걸이를 하고 안팎으로 흙을 발랐다. 구들은 버드나무 가지를 깔고 흙을 발랐으며, 굴뚝은 판자로 만들어 밖에 세웠다. 이런 집을 늦가을까지 지었는데, 겨울이 되어도 채 마르지가 않아 불을 지피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연기가 심하게 나서 엄동설한에도 사람들은 문을 열어 놓고 이불을 덮고 있어야 했었다.
봄이 되자 만척 주식 회사는 식량 종자, 가축 수레, 탈곡기 등을 각 농가에 보급하였고, 비로소 농사를 지어 가을에 탈곡하게 되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경찰을 앞세우고 집집마다 돌면서 알곡을 빚으로 몽땅 걷어가고 잡곡을 식량으로 나눠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