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촌[상지시]

한자 黎明村[尙志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흑룡궁진 여명촌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행정 지명
가구수 270세대
인구[남,여] 979명
개설 시기/일시 1984년
변천 시기/일시 1959년
변천 시기/일시 2002년
정의

흑룡강성(黑龍江省) 하얼빈시[哈爾濱市] 상지시(尚志市) 흑룡궁진(黑龍宮鎭)에 속한 마을.

개설

여명촌은 흑룡궁진(黑龍宮鎭) 정부 소재지에서 40㎞ 떨어져 있다. 동쪽과 남쪽으로 건국촌(建國村), 서쪽으로 홍기촌(紅旗村), 북쪽으로 금하촌(錦河村) 등 한족 마을들과 인접해 있다.

명칭 유래

1954년 합작 회사 때부터 ‘희망’이란 의미를 가진 여명사라 불렸다.

형성 및 변천

여명촌은 본래 연수현의 관할지였다. 1929년부터 조선인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하면서 마가점[오늘의 여명촌]을 비롯한 이은둔, 덕림, 용궁, 팔호, 오호, 왕문, 조생갑, 우가둔, 용산둔 등의 지방에 단독으로 동네를 이루거나 한족들 속에 끼여 살며 수전을 개간하고 소작농으로 어렵게 생활해 왔다.

1945년 8·15 해방을 맞이하고 토지 개혁 운동을 거치면서 여러 동네에 분산되어 있던 농호들이 점차 마가점, 조생갑, 우가둔, 신둔 등 몇몇 동네로 집중되었다. 한인 마을들이 자리를 굳히며 흑룡궁구 관할 소속이 되었다.

1959년 인민공사 때 여명대대였으며, 1974년 10월 흑룡궁구가 연수현에서 상지현으로 관할이 변경되면서 여명촌과 기타 한인 마을들도 상지현 제5구[흑룡궁구] 소속이 되었다.

이후 호조조, 초급사, 고급사 단계를 거쳐 1958년 인민공사 설립과 함께 단독 행정 관리 구역인 여명생산대대와 승리생산대대[우가둔과 신둔]의 두 대대로 나뉘었다가 1983년부터 세대별 생산 도급제를 실시하며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이때부터 승리대대를 선흥촌(鮮興村)으로 개칭하였다. 1984년 여명촌으로 개칭되었고, 2002년 선흥촌과 합병하여 여명, 우가, 신둔 등 3개 자연 마을을 관할 범위로 하는 행정촌이 형성되었다.

현황

여명촌은 2002년 현재 270세대, 인구는 979명이며 319㏊의 수전을 경작하고 있다.

참고문헌
  • 상지시 조선 민족사 편집 위원회, 『상지시 조선 민족사』민족 출판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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