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楚山村[尙志市]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고지명 |
| 지역 |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초산촌 |
| 시대 | 현대/현대 |
| 제정 시기/일시 | 1984년 |
|---|---|
| 폐지 시기/일시 | 2001년 |
흑룡강성(黑龍江省) 하얼빈시[哈爾濱市] 상지시(尚志市) 상지조선족향(尚志朝鮮族鄕)에 속했던 마을.
2001년 현재 초산둔에는 64세대의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한족이 7세대이고 나머지는 조선족 세대이다. 전체 52.4ha의 수전과 51ha의 한전을 경작하고 있다.
초산둔은 조선족, 한족 두 민족의 혼합촌으로 1950년대 초부터 50여 년간 두 민족이 화합하여 마을을 건설하고 경영해 왔다. 조선족과 한족 혼합 마을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평안북도초산군에서 이주해온 농호들이 많기 때문에 고향의 이름을 따 초산이라 명명하였다.
1938년 압록강 중류와 하류에 수풍댐을 쌓고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평안북도의 초산군, 벽동군 대부분이 수몰되었다. 일제는 만척 주식 회사를 내세워 집단 이민을 조직하였고, 초산군 10개 면의 농호 100세대가 신의주, 단동, 야부리를 거쳐 금하둔에 도착하였다. 금하둔 만척 회사 창고에서 거주하다가 1939년 7월, 초산둔으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해방 후 1946년 동북 민주 연맹에서 파견한 토지 개혁 공작대가 초산둔에 들어와 토지 개혁을 단행하면서 땅을 배분받았다. 1958년에는 금하생산대대 소속 제3, 4 생산소대로 있었고, 1975년 초산둔은 단독 생산대대가 되었다가 1984년 초산촌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