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朝鮮의 딸 |
|---|---|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 지역 | 산시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연극 |
|---|---|
| 작가 | 집체 |
| 출연자 | 김위 |
| 창작|발표 시기/일시 | 1941년 |
1941년 2월 조선 의용군 선전대가 산시성(陕西省) 연안(延安)의 청년 회관에서 공연한 연극.
「조선의 딸」은 당시 정치부 제3청의 책임자였던 곽말약(郭沫若)과 항일 선전 사업의 책임자 윤세주(尹世胄)의 지도하에서 공연되었다. 1941년 3월 산시성 조선족 교포들에게 다시 상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후 무한(武漢)·요하구(遼河口)·서안(西安)·석양(昔陽)·낙양(洛陽)·태항산(太行山) 등지에서 공연되었다.
전 2막의 장막극이다.
「조선의 딸」은 조선 의용군 선전대가 연안에서 공연한 연극으로 한 농촌 마을에 침입한 일본군과 용감히 맞서 싸우는 조선족 처녀의 이야기이다. 연극 주인공은 영화 황제로 알려진 김염의 여동생 김위가 맡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농촌 마을에 아름답고 잎이 무성한 정자 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정자 나무 아래에서 즐겁게 쉬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일본 군대가 쳐들어와 정자 나무를 마구 찍어 버리려 한다. 일본군들의 거친 행동에 격분한 정자 나무 집 주인은 참을 수 없어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일본군들에게 달려들어 결사적으로 싸운다. 하지만 집 주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한 일본 군인들을 당해낼 수 없어 끝내 일본군들의 총칼에 숨지고 만다.
일본군의 야만적인 폭력을 목격한 딸은 복수의 뜻을 품고 일제의 앞잡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항일 무장 투쟁의 길을 찾아 싸움터로 나가면서 막을 내린다.
「조선의 딸」은 당시 일제의 침략에 맞설 수 있는 것은 항일 무장 투쟁뿐이라는 점을 선전하기 위해 공연된 연극이다. 「조선의 딸」은 당시 동북 지구의 조선족들을 고취시켰으며 항일 무장 투쟁의 방향성을 제시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