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심줄」

한자 斷心줄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가무극
양식 전 1막의 가무극.
창작|발표 시기/일시 1930년대
초연|시연장 만주 왕청현 화룡현 안도현 일대
정의

나이 어린 남매의 투쟁을 형상화한 아동 단원들의 가무극.

개설

1932년부터 1935년 사이에 왕청현, 화룡현, 안도현 등지에 항일 유격대의 근거지를 창설하고 조선족들이 근거지를 수호하고 강화하기 위한 투쟁을 하면서 대중들에 대한 선전전에 필요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단심줄 놀이는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전통적인 무용 형식을 발전시킨 것이다. 소나무에 여러 가닥의 줄을 매어 드리우고 그것을 한 아이가 한 끝씩 쥐고 돌아가면서 노래하며 춤추는 원무 형태였다. 이와 같은 형식의 가무 놀이가 언제 시작된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함경남도 단천 지방에서는 19세기 말까지 대보름날마다 흥겹게 즐긴 민속놀이로 전해왔다. 즉 단천읍에서는 '소새골'이라는 뒷산에 놀이터를 만들고 대보름날이면 '상원놀이'라 하여 큰 소나무에다 여러 색깔의 천을 매어 드리우고 소년, 소녀들이 그 끝을 하나씩 잡아 서로 엇갈려 빙빙 돌아가면서 줄을 닿았다 풀었다 하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때 음악 반주로 북과 장구의 장단에 맞추어서 피리를 불고 또 제금도 울렸다. 이러한 기악 반주는 어른들이 하였다.

이 놀이를 상원놀이라고 한 것은 그해의 첫 달인 정월 대보름날의 놀이라는 뜻에서였다고 한다. 이날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상원놀이터로 모여서 그해의 행복한 생활을 축원하면서 마음껏 즐겼던 것이다.

공연 상황

1933년 9월 팔도구 습격전투를 앞두고 연길지구의 항일 유격대와 유격구민들, 병사들이 모여 개최한 장재촌의 환영모임에서도 공연되었다.

구성

전 1막의 가무극이다.

내용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의 불길 속에서 창조된 단심줄 놀이는 중국 동북 일대, 특히 유격 근거지의 아동단원들과 유격대원들이 즐긴 놀이로 인민들 속에 널리 전파되어 각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단심줄 놀이는 유격대의 아동단원들과 유격 근거지 내의 아동들이 명절날이면 잊지 않고 즐긴 군중적 놀이였다. 또한 아동단원의 입단 서약식이 끝난 후에 새로 입단한 단원들을 축하하는 오락회를 진행하였는데, 이때 가장 즐거운 순서의 하나로 단심줄 놀이를 하였다. 또한 단심줄 놀이는 항일 유격대원들이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혹은 행군 도중 휴식하는 때를 이용하여 하기도 하였다.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야외 무대나 실내 무대에서 공연된 단심줄 놀이는 일제를 무찌르고 조국을 해방시키려는 유격대원들의 전투 사기를 북돋워주었다. 그 뿐 아니라 조선과 중국 양국의 민족의 친선, 단결을 강화하는데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아동단원들은 북만주에 있는 항일 유격대를 찾아가서 공연했는데 단심줄로 사용할 색천이 없는 경우에는 유격대원들이 각반을 풀어 나무에 매어 드리우고 그 끝을 쥐고 춤을 추기도 했다. 또 그것도 없는 경우에는 피나무 껍질을 벗겨서 줄을 만들어 늘여놓고 그것을 닿았다 풀었다 하면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의의와 평가

단심줄의 오색천은 사방과 중앙 다섯 방향을 상징하며 가운데 기둥은 단심(丹心), 하나를 향한 열정적인 마음을 상징한다. 또한 하늘과 땅을 하나로 연결하는 솟대와 같은 역할로 우리민족의 사상이 녹아있다. 성인들의 연극 활동뿐만 아니라 아동대원들이 꾸민 가무극이라는 것과 항일 유격대원들과 여러 대중들이 함께 어울려서 볼 수 있는 공연이라는 것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운일, 『중국 조선족 연극사』(신성 출판사, 2006)
  • 김동훈 외, 『희곡집』(보고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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