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夜學으로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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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연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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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발표 시기/일시 | 1920년대 후반 |
1920년대 후반 연변에 있는 딸이 보낸 편지를 둘러 싼 소동을 다룬 경희극.
봉건적인 낡은 사상과 인습을 비판하고 대중들을 문화적으로 계몽시키는 데 이바지한 연극 가운데 하나이다. 연변 각지에 널리 보급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관객들에게 절찬을 받았다.
「야학으로 가는 길」은 1930~1940년대의 조선족 항일 투쟁 시기 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딸에게서 온 편지」로 제목을 고쳐 연변 각지에서 공연되었던 희극이다.
전 1막 2장의 경희극이다.
막이 열리면 주인공 늙은 부부가 편지를 들고 등장한다. 시집 간 무남독녀에게서 편지가 왔으나 눈뜬 소경으로 일자무식인 늙은이들은 편지를 알아보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글 아는 사람을 찾아다닌다. 이리저리 헤매던 늙은 부부는 마침 길 가던 신사 한 사람을 만나 기뻐하며 편지를 읽어달라고 간청한다. 멋있게 넥타이까지 맨 옷차림을 한 그 신사는 편지를 받아 들고 뜯어본다. 한참 올려 훑고 내려 훑고 하던 신사는 갑갑하다 못해 나중엔 울적해지기까지 한다. 어쩔 바를 몰라 하는 신사의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던 늙은 부부는 자기 딸에게 무슨 말하기 어려운 불상사가 생긴 줄 알고 신사에게 거듭 다그쳐 묻다가 그만 통곡을 하고 만다.
이런 광경을 본 야학 선생(사실 지하 사업에 종사하는 혁명가)은 찾아와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서 편지를 받아들고 늙은이들에게 차근차근 읽어준다. 편지의 내용은 다름 아니라 딸이 옥동자를 해산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신사도 옷차림만 버젓할 뿐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이여서 편지를 받아 쥐고도 읽을 수 없어 울적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계기로 야학 선생은 문맹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밝혀주면서 글을 배워야 한다고 설득한다. 깊이 설득된 늙은 부부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야학교로 가는 것으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연극의 이야기가 밝혀주는 바와 같이 딸에게서 온 편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희극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글을 모르는 상황을 해학적으로 조소하면서 문맹 퇴치의 필요성을 효과적으로 그려내어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연극은 대조(겉과 속이 다른 신사의 형상)와 오해(딸이 옥동자를 낳았다는 기쁜 소식이 신사의 거동으로 생기는 오해)라는 수법의 도입으로 희극성을 강화하였다. 이는 당시 조선족 연극인들의 연극적 인식과 수법이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