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5)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지역 길림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연극
작가 한유한
작곡가 한유한
주요등장인물 한유한
창작|발표 시기/일시 1940년
정의

조선족 남녀의 사랑과 이별, 재회를 다룬 가극.

개설

한국 청년 전지 공작대에서 공연한 장막 가극 「아리랑」은 한민족 사이에서 오랜 역사를 두고 전해진 ‘아리랑 이야기’에 기본 바탕을 두고 하일의 현실적인 내용을 재치 있게 결부시킴으로써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민족적 정서의 흐름을 그리고 있다. 이 가극의 창작, 작곡, 지휘, 주인공 등을 모두 한유한이 맡았다.

공연 상황

1940년 5월 20일부터 5월 말까지 서안 남원문 실험 극장에서 공연한 대형 가극이다. “비록 전등이 없어 검은 갓을 씌운 석유 등잔을 두 개 걸어 놓았으나 관중들의 흥미를 덜 수는 없었다”, “많은 관중들 또한 고향을 떠나서 후방에 온 사람들이었으므로 저마다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었다.”, “이 가극은 사건 배치가 긴장감을 부르고 극적 분위기가 세밀하게 짜여 있어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었다” 라고 당시 신문에 보도되었다.

구성

「아리랑」의 음악은 서곡 외에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마을 처녀의 독창에 민요 ‘봄이 왔네’와 목동의 독창이 목가이고, 나중에 합창 ‘삼천리 강산에 깃발이 날린다’ 등의 음악으로 구성되었다. 제2장은 민요 ‘아리랑’을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백성들이 합창하고, 제3장은 혁명군의 합창으로 ‘한국 행진곡’을 부르며 30년 후에 마을 처녀와 목동이 함께 부르는 민요 ‘고향 생각’이 있다. 마지막 4장은 다시 ‘한국 행진곡’으로 극을 마무리한다.

내용

막이 오르면 무대 위에 높고 큰 아리랑 고개의 장엄한 배경이 나타난다. ‘봄노래’ 소리 들려오며 천진하고 예쁜 마을 처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사뿐사뿐 등장하더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들꽃을 뜯어 바구니에 담는다. 뒤이어 산기슭에서 홀연 늠름한 목동이 나타난다. 그는 구성진 목가를 부른다. 아리랑 산기슭에서 만난 처녀와 목동은 대자연의 품속에서 서로 정이 들고 사랑이 무르익어 부부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조선 방방곡곡에 일제 침략의 손길이 뻗쳐 고향의 산천과 전원은 짓밟히고 말았다. 5년이 지난 후 부부의 고향 땅도 일제에게 빼앗긴다. 굶주리는 조선의 난민들은 「아리랑」 노래를 슬피 부르며 아리랑고개를 넘어갔다. 침략자의 노예가 될 수 없는 고향 사람들은 정든 땅을 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아 중국의 동북지역으로 피난간다. 그들은 여기서 생계를 찾고 원수들과 투쟁한다. 목동과 처녀도 아리랑산에서 나를 구할 맹세를 하고 늙은 부모들을 하직하고 서쪽으로 떠난다.

35년이 지나 목동과 처녀도 늙은이가 되었다. 이때 조선 혁명군이 사선을 넘어 그들의 마을을 지나게 된다. 비록 늙었으나 부부는 자식들을 거느리고 이 혁명대오에 참가한다. 그 후 그들은 압록강을 건너 고향 땅을 밟게 된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혁명군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앞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이어가며 적을 향해 돌진한다. 함께 싸우던 목동과 처녀도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들의 피는 헛되이 흐르지 않았다. 피에 젖은 아리랑산 봉우리에 승리의 깃발이 휘날리며 극은 막을 내린다.

의의와 평가

당시 신문 기사들은 음악, 사건 배치, 무대 설정, 연기, 조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아주 훌륭한 성과물을 남겼다고 극찬하고 있다. 이 공연은 당시 서안의 모든 조선족 인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공연이 되었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가극의 형식은 시대적 현실에 비추어 봐도 참신한 시도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적 정서의 흐름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참고문헌
  • 김동훈 외, 『희곡집』(보고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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