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따라 한평생

한자 民謠따라 한平生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행사/행사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행사시기/일시 2007년 10월 24일~25일
행사 장소 길림성 연길시 하남로 16호
주관 단체 길림성 연길시공원로 977호
정의

2007년 길림성연길시 예술 극장에서 개최한 전화자(全花子) 교수의 민족 성악 교학 연구 성과 발표회.

개설

2007년 10월 24~25일에 연길시 예술 극장에서는 ‘민요따라 한평생’이라는 제목의 ‘전화자 민족 성악 교학 연구 성과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전화자는 연변대학 예술 학원 민족 성악 교수이며 중국 음악가 협회 회원, 중국 소수 민족 성악 학회 이사로서 지금까지 후대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연원 및 개최 경위

‘민요따라 한평생’은 전화자의 예술 생애와 갈라놓을 수 없다. 1943년 4월 27일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난 전화자는 2살 나던 해에 부모를 따라 화룡현으로 이주하였다. 전화자의 어머니는 강원도 민요를 중심으로 민요를 즐겨 부르고 많이 알고 있어 한국 ‘아리랑 연구소’의 강원도 민요 채집자가 찾아 온 적도 있었다.

집에서 심심풀이로 부르던 어머니의 민요 가락을 들으면서 자라난 탓인지 어릴 적부터 노래를 즐겨 불렀다. 전화자가 열한 살 때는 「누나」라는 노래를 불러 녹음한 후 그 테잎을 중앙 방송국에 보낸 적이 있었다. 예상치 않게 ‘전국 소년 아동 성악 콩쿠르’에서 2등상을 수상하였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 문예조에 들어가 노래 활동을 시작한 후로는 현내 교내 문예 활동에서 독창 및 이중창으로 여러 번 상을 타면서 점차 가수의 꿈을 품게 되었다.

1959년 9월 전화자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연변 예술 학교의 성악 학부에 입학하였다. 예술 학교에서 김문자 를 스승으로 모시고 ‘서도 민요’를 배웠다 엄격한 스승의 지도 아래에서 시조 「수심가」, 「회심가」 등 서도 민요의 기초를 쌓아 나갔던 것이다.

1963년 우수한 성적으로 예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학교에 남아 민요를 가르치게 되었다. 21살 나이에 교편을 잡은 것인데, 어린 나이에도 드높은 열정으로 학생들에게 민요를 가르치는 한편 제자들과 함께 도시와 농촌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민요를 불러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63년에는 연변인민방송국에서 무려 400여 수의 민요를 녹음하여 방송했던 경력들로 인해 연변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민요 가수로 뽑혔다.

1966년 문화 대혁명이 터지자 전화자는 농촌으로 내려갔다가 1972년에 연변 예술 학원이 재건되자, 전화자는 학원에 복귀하여 학생들에게 민요를 가르치는 한편 연변 라디오 방송과 여러 무대에서 더욱 왕성한 예술 활동을 펼쳐갔다. 그리고 민족 성악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 성악 예술 기교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1978년에 상해 음악 학원으로 가서 다시 공부하였다.

1990년 5월, 전화자는 한국국립 국악원이승열 원장의 초청과 한국국제 문화 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중국의 첫 국립 국악원 연수생으로 한국에 건너와 안비취 명창을 스승으로 모시고 경기 민요를 배우게 되었다. 그 후 1993년에 연변 텔레비전 방송국 「가요 무대」에서 처음으로 제자들과 함께 「방아 타령」·「자진 방아 타령」·「자진 배 노래」 등 경상도 민요를 불러 연변 대중들에게 한인[조선족] 민요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었다.

1994년 5월 전화자는 제자들과 함께 ‘전화자 교수 30돌 성과 발표회’를 열었고, 2007년 10월에는 ‘민요따라 한평생’이란 주제로 음악회를 개최함으로써 전화자의 ‘민요야말로 내 인생의 최고의 동반자’라는 좌우명을 보여주었다.

행사 내용

공연에는 전화자의 제자들이 대거 출현하여 전수받은 실력을 뽐내었다. 제자들 모두가 합창한 「아리랑」을 시작으로 「농부가」·「닐리리아」·「경복궁 타령」을 연변대학 예술 학원 민족 성악 교수인 최성룡과 강혜정, 연변 가무단 가수 김순희가 연창하였다. 최성룡과 김순희는 다시 「영변가」와 「창부 타령」을 각각 독창으로 불러 박수를 받았다.

연이어 「압록강 이천리」를 연변대학 예술 학원 교수인 신광호가 독창하였다. 그 뒤로 연변 가무단 가수인 임향숙·강혜정·렴수원·마복자가 「산골에도 만풍년일세」·「회심곡」·「흥개호 어부의 노래」·「장백산 타령」 등의 곡을 불렀다. 북경 가무극원 가무단 단장인 림평은 「바다의 노래」를, 각각 연변 가무단과 연길시 구연 예술단의 가수로 있는 박리정과 김청이 「울산 아가씨」와 「양산도」를, 두 예술단 소속의 전화자·임향숙·렴수원·박리정·김청 등이 「모아산 고개」·「첫수학」·「경사가 났네」·「사제곡」 등의 연변 가요를 열창하였다. 「달 타령」·「소야곡」 등의 노래가 연변 가무단의 류림과 북경 사범 대학의 김현주에 의해 불려졌고, 상해와 심양의 음악 학원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허령과 박춘희가 「사과배 따는 처녀」, 그리고 「풍년이 왔네」 등의 민요를 불렀다.

YB 현대 음악 스쿨 교장인 량춘화는 「노들강변」·「여량 수레 령넘어 가네」 등의 곡으로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했고, 연변대학 예술 학원 성악 교수 박춘희의 「정방산성가」 또한 사람들의 감동을 북돋았다.

이 외에도 많은 제자들이 무대에서 훌륭한 기량으로 스승인 전화자의 업적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으며, 특히 한국 중요 무형 문화재 제57호 경기 민요 보유자 이춘희와 제29호 서도 소리 전수 교육 조교 유지숙이 특별 출연하여 「노래 가락」·「청춘가」와 「산천가」를 불렀다. 이어 공연의 마지막에 모든 출연자와 전화자가 같은 무대에서 열창하는 모습은 관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행사 장소는 연길시 예술 극장이었고 연변대학 예술 학원에서 주최하고 한국문화관광부 예술국 전통예술과의 협찬으로 성대히 열렸으며 1,000여 명의 관람자들이 참석하는 가운데서 한인[조선족] 전통 민요 공연을 중심으로 전화자의 생애를 소개하였다.

현황

‘전화자 민족 성악 교학 연구 성과 발표회’인 ‘민요따라 한평생’이 개최된 후 길림 민족 녹음 녹화 출판사의 협찬으로 음반 『민요따라 한평생』이 발간되었다.

이를 통해, 한인[조선족] 민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이바지해 온 전화자의 반백년이 넘는 인생 여정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제자들과 더불어 훗날 발전 방향의 초석이 되었으며, 점차 더 큰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참고문헌
  • 「OOOOOOOO」(『연변 라지오 텔레비 신문』, 2011. 5. 5)
  • 강순선, 『전통 민요의 명맥을 잇기 위하여-전화자 선생님의 50년 외길 인생을 더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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