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才談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기지와 풍자가 가득한 한인[조선족]의 구연 예술.
재담은 넓은 의미에서 모든 해학적이고 기지가 충만한 이야기, 언어 행위들이 모두 망라된다. 재담은 두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이 표현하는데 ‘대화 재담’, ‘남녀 재담’, ‘화장 재담’, ‘다인 재담’ 등이 있다. 재담은 말하고, 배우고, 웃기고, 노래하는 형식을 통하여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세상이나 인정 세태를 비판, 풍자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연기자가 혼자서 재치 있는 말로 관중들에게 유모아적으로 표현하는 구연예술인 ‘만담’도 ‘재담’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으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자매인양 동시에 공연될 때가 많다.
‘재담’과 ‘만담’은 주로 민간 명절이나 민속 의식 등 활동에서 공연되었다. ‘재담’과 ‘만담’은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며 세련되고 깔끔한 언어로 절묘하게 짜인 구성과 앞뒤 사개가 맞는 예술 효과를 통하여 재미있지만 저속하지 않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게 사람들에게 미적 감수를 선사한다. ‘재담’과 ‘만담’은 짙은 민족 언어 특색과 지방 특색을 갖고 있다.
재담과 만담의 연원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뱅이굿」·「남사당패 놀이」와 같은 마당놀이에서 막간에 입담 좋은 사람이 등장해 관중들을 웃기면서 즐겁게 한 것이 만담과 재담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박춘재는 고종과 농담을 할 정도로 대접받던 연예인이었고, 20세기 초에 들어와서는 신불출이 유명하였다. 신불출은 1930년대 중반부터 「곰보 타령」·「엿줘라 타령」·「망둥이 세 마리」 등의 만담으로 당시의 세태를 풍자하고 해학적인 재치를 보였다.
1930년대 말에 윤백남과 신불출 등이 중심이 되어 본격적인 희극 운동을 위해 ‘담우회’를 만들었다. 일제 강점에 대한 풍자적인 만담·재담으로 본격적인 공연을 개시하였고, 한반도는 물론 중국의 동북 지역 조선 집거구를 돌아다니면서 공연하였다.
해방 이후 1950년대에 들어서서 연변 내에는 오락 장소와 사교춤 야회에서 여흥 프로로 재담과 만담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연변교육출판사의 편집원으로 근무하던 임장철과 「삼로인」 구연 예술의 창시자인 최수봉은 자주 재담과 만담을 엮어서 출연하였다. 림장철은 「세계일주」라는 제목으로 만담을 엮어 관중들의 절찬을 자아냈다. 최수봉은 늘 야회의 취지와 모인 인물들의 신분에 맞추어서 제목을 바꿔가면서 만담을 엮곤 하였다. 문화 대혁명 직전까지 근 100여 편의 재담과 만담을 발표, 공연하였는데 그중에서 「좋다 타령」·「말아닌 말이 말썽」·「태양」·「해산중 출입 금지」·「바지 열두 개」 등이 비교적 유명하였다.
문화 대혁명 시기에 들어서면서 만담과 재담 구연 예술은 침체 상태에 있다가 1980년대에 들어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최수봉이 쓴 「장생불로약」·「달고 쓴 것」·「돈」·「말」, 리영근이 각색한 「개고기 오락회」, 림장철이 쓴 「웃음 철학」, 김창봉이 쓴 「입담풀이」 등 많은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1979년 3월 5일 연변 구연 예술 극단의 창립은 중국에서의 조선족 구연 예술 발전에 역사적인 한 장을 적어 넣게 되었다. 만담, 재담 창작이 의사 일정에 올라있었고 해마다 우수한 작품들이 속출하였다.
따라서 직업 배우와 여배우들이 많이 배출되면서 여러 지방 공연 무대에서 활약하였다. 1978년에 연변 구연가 협회가 발족하였고 1988년에 연변 구연가 협회와 연변 텔레비죤 방송국에서 연합으로 구연 예술 경연을 개최하고 우수한 작품과 배우들을 장려하였는데 작가 김창봉, 배우 리동훈 등이 수상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배우들도 많이 등장하였는데 한창식·강동춘·리동훈·한석준·전영호·황명화·장미옥·조학범·리순자·리옥회 등이 유명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재담·만담 예술은 쇠퇴기에 들어섰지만, 아직까지 명맥을 잃지 않고 신진 배우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현대 예술에 접목하여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 변화되고 있다.
재담은 배우가 두 명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연기하는 구연 예술이다. 내용과 효과는 만담과 비슷하며, 늘상 어느 한쪽이 화제를 만들면 다른 한쪽은 바로 옆에서 그 논점을 긍정하거나 부정하기도 하며 되도록이면 관중들이 알려고 하는 일이나 속심의 말들을 끄집어내어 재미있게 엮어 간다. 주로 연극처럼 무대에서 이루어지지만 간단한 의상과 소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내용은 주로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나 전래되는 옛날 이야기 혹은 정치, 사회적 풍자를 담은 내용이 많으며, 단어의 중의적 특성이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이 많다.
만담은 보통 일상 생활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착오적인 현상이나 불정당한 사실들을 폭로하고 풍자하며 오해나 우연적인 봉착 등 예술 기교로 좋은 사람, 좋은 사적에 대해 칭송함으로써 관중들로 하여금 웃음 속에서 정확한 이치를 터득하게 한다.
배우들은 수시로 여러 가지 배역을 바꾸는데 노인, 어린이, 여인 등으로 각색하면서 한 사람이 여러 인물을 연기한다.
재담과 만담은 재치있는 인물의 기질을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하거나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웃음을 이끌어 낸다. 이야기 진행 과정에서 재치 있는 인물의 말이나 행동 또는 결함 있는 인물의 말이나 행동으로 예상치 못한 결말을 통해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결점 있는 대상이나 사회의 문제점을 우스꽝스럽게 드러내기도 하는데, 직접 이런 것들을 비난하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 풍자적으로 표현한다. 익숙한 소재나 형식을 빌어서 주제를 익살스럽게 표현하기도 한다.
2005년에 들어서면서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한인[조선족]의 문화유산에 대한 조사, 발굴 사업을 적극 추진하였다. 한인[조선족]의 재담(才談)과 만담(漫談)을 비롯한 구연 예술도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목되어 2009년에 길림성 인민 정부로부터 길림성급 무형 문화유산 대표 종목으로 등재되었다.
한인[조선족]의 재담과 만담은 1950년대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는데 1980년대에 들어서서 퇴조기를 맞게 되었으며 수많은 재담·만담 연예인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새 천년에 들어서면서 조금 저조기에 들어서고 후계자 배양 발걸음이 좀 더디기는 하였지만 무형 문화유산 종목으로 지정되면서 사회의 중시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으며 신진 연예인들이 적지 않게 배출되었다.
한인이 중국 동북에 이주하여 정착한 100여 년 사이 이미 6대에 이르는 재담·만담 기능 전승 보유자들이 나타났는데, 재담·만담 공연에 참가한 연예인 수는 50여 명에 달하였다.
비교적 인기를 얻었던 재담·만담 전승인들로는 제1대에 심명호[남, 1883년 6월생, 몰년 불명], 제2대에 최수봉[남, 1921년 9월생, 몰년 불명], 리동진[남, 1930년 출생], 리상춘[남, 1930년 6월생], 제3대에 강태억[남, 1939년생], 방미자[여, 1942년생], 제4대 리동훈[남, 1952년생], 강동춘[남, 1955년생], 전영호[남, 1958년생], 한석준[남, 1956년생], 장미옥[여, 1957년생], 리순자[여, 1958년생], 제5대에 김영식[남, 1965년생], 리경화[여, 1966년생], 제6대에 한예화[여, 1984년생], 최춘송[남, 1981년생] 등이었다.
그중에서 최수봉은 한인[조선족] 구연 예술의 창시인으로 추대되었다. 최수봉은 1950년대부터 재담·만담·삼로인·연변 창담·평고 엮음 등 구연 예술 창작과 공연에 몰두하였으며 한인[조선족]의 구연 예술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최수봉은 1951년 1월에 창립된 연변 문예 공작단에서 전문 예술 일군으로 활약하였으다. 1979년 3월에 최수봉의 건의에 따라 연변 구연 예술단이 세워지자 직접 단장을 맡았으며 인재 배출, 구연 창작과 공연을 이끌어나갔다.
1980년 한해만해도 동북 3성에서 204차의 순회 공연을 하였다. 관중 수는 16만 명이 넘었다. 한인[조선족] 재담·만담 인기 연예인 강동춘은 1978년부터 구연 예술을 접촉하기 시작하였다. 최수봉 등의 전문적인 가르침을 받아 주요 배우로 활약하게 되었다. 1982년에 연길시 조선족 예술단이 세워지면서 원래 연변 구연단의 배우였던 강동춘은 구연조에 편입되어 재담과 만담 공연에 몰두하였다.
당시 강동춘이 표연한 만담 「개」·「술」 등은 대중 속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노인부터 소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강동춘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1985년 7월에 연길시 조선족 구연 예술단이 설립되면서 강동춘은 최고 인기 배우로 민간에 알려졌으며, 1991년 5월에 연길시 조선족 구연 예술단[2007년 연길시 조선족 예술단과 합병] 단장을 맡으면서 재담과 만담 예술은 최고봉으로 이끌어나갔다.
1991년 11월에 중국 구연가 협회, 길림성 구연가 협회, 연변 구연가 협회 등 조직에서 연합으로 강동춘 만담 표현 예술 및 조선족 구연 연구 토론회를 개최하여 조선족 구연 예술을 자랑하였다.
2002년 한국한민족 신문사의 초청으로 강동춘 등이 한국에서 구연 절목을 공연함으로써 중국 조선족의 구연 예술이 한국에 접목하게 하였다. 조선족 재담, 만담이 길림성급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신진 배우들인 김영식·리경화가 대표적인 전승 보유인으로 지정되었다.
김영식은 1985년부터 구연 예술을 접촉하게 되었는데 강동춘의 정성어린 지도하에 얼마 안 되어 인기 있는 만담·재담 연예인으로 부상하였다. 김영식은 구연 예술에 몸을 담근 후 수많은 만담·재담·창담 절목을 공연하여 구연 예술계에서 앵무새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으며, 지금은 국가 2급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리경화는 1992년부터 강동춘 등 선배들한테서 구연 예술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수많은 재담·만담 공연에 참여함으로써 관중들의 열렬한 호평을 받아왔으며 연길시 조선족 구연단의 인기있는 여성 배우로 활약하였다. 지금은 국가 1급 배우로 부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