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三老人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한인[조선족]의 민족 특징과 지방 특성이 농후한 민간 구연 예술.
「삼로인」은 재담·얼광대·만담·막간극 등 여러 구연 예술 형식을 활용하여 연출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 후 중국 내 민족 예술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 새 사회의 새 기상을 노래하는 새로운 예술 표현 형식들이 출현한 것이다. 1950년 1월 9일 연변 문예 공작단[약칭 연변 문공단]은 전문 예술인들을 모아 농촌 생활을 체험하며 새로운 구연 작품 소재를 수집하였다. 이를 계기로 「삼로인」 구연 예술이 시작되었다.
전문 예술인들은 화룡현의 용수·두도·서성 등 향진의 여러 촌으로 내려가 농민들 집에서 지내면서 낮에는 농민들과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농민들에게 노래 또는 글을 가르쳤다. 이때 전문 예술인들은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농촌 생활에 대한 어려운 처지, 요구, 희망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농촌에서는 품앗이·호조조가 농업 생산에 도입되었는데, 아직도 소농 경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950년 1월 22일 밤, 화룡현 용수향신민촌 정부 사무실의 온돌방에서 예술인들과 농민들이 함께 하는잔치가 벌어졌다. 백여 명의 농민 관람객들이 참석한 공연장에서 최수봉·허창석·원주삼 등이 노인으로 분장하고 호조조로 인해 생긴 갈등을 구연하였다.
이를 계기로 「삼로인」이라는 새로운 구연 예술이 나타나게 되었다. 세 구연 배우들은 그때부터 넉 달 남짓 화룡현 용수·두도·서성 등 향진의 여러 마을을 돌며 무려 백여 차례 공연을 하였다.
1950년 6월 「삼로인」은 농촌에서 도회지로 극장 무대를 옮겼다. 연길시스탈린 극장(현 인민 영화관)에서 첫 공연을 하였다. 연길 공연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뒤이어 용정시와 도문시에서도 공연을 하였다.
1950년대 말부터 「삼로인」은 연변 각 시와 현의 예술 단체에 보급되어 흑룡강성과 요령성의 한인[조선족] 거주 지역에도 보급되었다. 이와 동시에 배우들이 양성되면서 여러 지역에서 수시로 공연되었다.
「삼로인」 창시자들인 원주삼·허창석·최수봉 등을 이어 연변 연극단의 이영근·남수일·백종철 등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들이 되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삼로인」 형식은 이른바 ‘사회주의를 추화하는 형식’이라는 누명을 쓰고 공연이 중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된 후 「삼로인」은 그전의 누명을 벗고 여러 예술 단체들의 상설 종목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1979년에 연변 구연 예술단이 창립되면서 「삼로인」은 공연에서 빠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한창식·이동훈·황명화 등 신인들이 육성되어 대중들 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최초의 삼로인 작품 「호조조 좋을 시구」가 나온 뒤에 전문 작가들의 노력 하에 수많은 우수작이 창작되었다. 1950년대 「양돈장의 봄」·「백년대계」·「새 장정」은 대중의 호평을 받았으며, 1964년의 「풍년가」는 한국어로 북경 무대에서 공연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창작된 「증산절약 타령」·「계획적으로」·「밀리운 잔치날」·「장도 볼겸 님도 볼겸」 등은 대중의 극찬을 받고 간행물에 실리기도 하였다.
「삼로인」 공연은 매우 많았다. 「삼로인」이 세상에 나오고부터 문화대혁명 전까지 15년간 3,000여 차례의 공연이 있었다. 1957년 3월 15일 화룡현 예술단이 세워지면서 공연된 「삼로인」은 1,700여 차례[1957-1989년]에 달하여 공연 회수는 단연 으뜸이었다. 이렇게 「삼로인」은 60여 년간 끊임없이 새롭게 창작되었으며 시대성·사상성·민족성·대중성이 강한 민족 예술로 부상하였다.
「삼로인」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해학성이 강하고 독특한 연변 방언을 쓰고 있다.
(1) 인물의 유형화 : 「삼로인」은 개명형·동요형·보수형의 세 인물로 정형화할 수 있다. 각각의 인물은 자신의 입장·견해에 따라 제기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린다. 마침내 동요형 인물이 개명형 인물에 설득되어 함께 보수형 인물을 설득시키는 구조를 띤다.
(2) 각본화 : 초창기에는 각본이 없이 전적으로 세 배우의 즉흥적 연기에 의해 공연되었다. 물론 출연 전에 문제 제기의 순서, 갈등의 형성, 설득의 근거, 연기, 동작, 위치 설정 등은 미리 맞춘다.
세 배우는 각자의 특기를 충분히 발휘하여 연기의 잠재력을 잘 보여준다. 1950년대 말부터 창작된 각본이 등장하였다. 이에 소재의 선택부터 구성, 인물의 모습·언어·표현·동작·위치까지도 문학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작품의 사상성·예술성이 한층 선명해졌고 인물들의 개성 또한 잘 드러나게 되었다.
(3) 슈제트의 연극화 : 「삼로인」은 등장부터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로 슈제트의 흐름 속에서 생활하게 되며 갈등 속에서 개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들은 무대에서 단순히 문제 해결을 위한 말다툼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문제의 핵심을 끄집어내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4) 언어의 희극화 : 「삼로인」의 언어는 해학성이 매우 높다. 연변에서는 보통 독특한 함경도 방언을 쓰고 있다. 그리고 길림 지구에서는 남부 지방의 방언을 흔히 쓰고, 요령성에서는 서북부의 방언을 많이 쓰고 있다. 생활 용어는 익살스러우면서도 해학적이며 관중들의 웃음보를 터뜨려 웃음 속에서 공감을 일으키고 교육을 받게 한다.
삼로인 「개장집」
나오는 사람: 풍영감[개명형]·오영감[동요형]·배영감[보수형]
줄거리:
배영감이 소매가 짧은 적삼에 한쪽 바지가랭이를 불쑥 걷어 올린 채 바오라기를 들고 황급히 뛰어 나오며 개를 부른다.
이때 오영감 역시 높은 소리로 개를 부르며 나온다.
오영감이 개장집을 운영하고 있는 배영감이 개를 찾는 모습을 보고 빈정거린다. 배영감은 못마땅히 생각하며 퇴박을 준다.
이때 저쪽 켠으로부터 풍영감이 마대에 묵직한 걸 넣어 메고 마주 나와서 마대를 팽개치고 배영감에게 눈을 부라린다.
배영감은 개를 찾는 중이라고 해명한다. 그러다 서로 오해를 풀고 한바탕 웃어댄다.
풍영감은 배영감을 보고 신문 방송에다 광고를 내어 개를 찾으라고 놀려준다. 오영감도 맞장구를 친다. 배영감은 두 영감을 질책한다.
오영감이 개장집을 운영하는 배영감과 풍영감을 서로 비교하면서 배영감의 운영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 말한다.
오영감은 짐짓 배영감을 올리추는 말투로 풍영감에게 치하한다. 배영감은 어깨가 으쓱해서 흐뭇해한다.
오영감은 더 뜸을 들여 울리추는 말투로 배영감을 비꼬아 준다. 배영감은 그래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계속 으쓱해 한다.
말이 오가다가 배영감은 자기를 비꼬는 말투임을 간파하고 오영감을 지릅 떠본다.
오영감은 제꺽 배영감 머리 뒤에서 때릴 태세를 취하고 종주먹을 한다. 배영감은 얼결에 뒤를 돌아본다.
오영감은 미처 쳐든 팔을 거두지 못하고 두 손은 함께 쭉 펴면서 체조하는 시늉을 한다.
배영감은 오영감을 놀려주면서 개를 찾으러 떠나려 한다. 풍영감은 마대를 기리키면서 개가 마대 안에 있다고 말한다.
배영감은 마대를 열어 보고 자기네 집 개가 옳은 것을 확인하고 한 시름 놓는다.
배영감은 감격하며 어줍게 풍영감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는 자기 개장집 경영을 위해 여러모로 잘 도와달라고 한다.
풍영감은 흔쾌히 함께 잘 합작해서 경영하자고 하면서 손을 내민다. 배영감은 제꺽 손을 잡으며 감격해한다.
오영감은 자기도 빼지 말고 함께 하자고 한다. 배영감과 풍영감은 시무룩히 받아준다.
세 영감은 통쾌히 웃으면서 퇴장한다.
이 작품의 작가는 이종훈[1947년 출생, 훈춘시 예술단에서 근무, 「삼로인」 창작과 공연에 주력했음]. 1984년 10월 1일 연변인민방송국 문예 야회에서 방송, 이종훈이 배영감역을 담당.
1990년대 초반까지 「삼로인」 구연 예술은 흥행하였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삼로인」은 침체기를 맞이하였지만, 2008년에 국가급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회복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현재 「삼로인」 대표적인 연기 단체는 연길시 조선족 구연 예술단[2007년 연길시 조선족 예술단 구연조로 편입]과 화룡시 예술단 등이 있다. 「삼로인」은 화룡시 지역에서 탄생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동북 3성 조선족 집거구에 전해졌다.
화룡시 예술단의 최중철[남, 1960년 출생], 허상권[남, 1946년 출생], 홍미옥[녀, 1970년 출생]은 「삼로인」의 대표적인 기능 전승인이다. 이들은 도시 또는 농촌에서 「삼로인」을 연기하고 있다.
특히 2006년부터 중국 정부에서 매년 6월 둘째 주 토요일을 ‘문화유산일’로 정한 이후 연변에서는 정기적으로 한인[조선족] 문화 예술 공연이 개최되고 있다. 이때 「삼로인」 구연 예술은 공연 프로그램으로 지정되었고 화룡시 예술단의 「삼로인」 연기는 주요 공연 프로그램으로로 지정되었다.
연길시 조선족 예술단은 「삼로인」 공연을 정기적으로 진행하였는데, 2009년 제4회 길림성 구연 예술 콩쿠르에서 김광철·이경화·최청송 등 신진 배우들이 「삼로인」 연기를 펼쳐 관중들의 절찬을 받기도 하였다.
2011년 ‘연변의 봄’ 사과배꽃 축제, 2011년 연변 음력설맞이 문예 야회, 2012년 제8회 연변 생태 문화 예술절, 2012년 ‘연변의 여름’ 조선족 민속 문화 축제, 2013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문예 야회 등 여러 축제 마당에서 「삼로인」 프로그램이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관중들의 찬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