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農夫歌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중국 한인[조선족] 집거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유행되던 농요.
「농부가」는 원래 모내기 소리의 일종으로서 「상사 소리」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상사 소리」가 판소리나 창극에 차입되고 민요 가수들의 공연종목으로 되어 널리 보급되는 과정에서 「농부가」라는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 구체적인 영농 작업(모내기)에서 벗어나 전반적인 농업 노동을 노래하는 민요로 변화되었다. 「농부가」를 통해 한민족의 일반 백성들이 일찍부터 농경을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 간주하여 왔음을 볼 수 있다.
한인[조선족]은 한반도에서 이주해 와 중국 땅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면서 농경을 일삼아 왔으며 「농부가」와 같은 농요들도 그대로 전해 애창해 왔다. 1950년대부터 민간 문예 연구자들은 민간에 깊숙이 자리하여 고유한 전통을 갖고 있는 민요 315수를 채록하여 정리하였는데 그 중에는 「농부가」도 포함되어 있다. 조선족 민간 문예연구자들인 조성일, 김태갑 등은 다년간 박정렬, 류증표, 김규찬, 이상철 등 민간인들을 방문하여 현지에서 「농부가」 연창을 채록하고 이를 민요곡집인 『민요 집성』[1981, 연변인민출판사]에 수록하여 중요한 문헌 자료를 남겼다.
옛날 「농부가」는 일반적으로 「긴 농부가」와 「잦은 농부가」의 두 개의 노래를 연결시켜 한 곡조로 불러 왔다. 「농부가」는 받는 소리와 먹이는 소리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보통 일손에 맞추어 부르기보다는 쉴 때에 더 많이 불렀다. 「농부가」의 선율에는 이전의 판소리 음악 형식이 어느 정도 섞여 있었으며 또한 잡가로 변화하기도 하였다. 「농부가」에는 농업 노동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고달픈 생활 처지와 소박한 염원, 부지런하고 성실한 근면성이 반영되어 있다.
옛날 한반도 남도 지역에서 많이 불렸던 「농부가」는 중국 한인[조선족] 집거 지역에도 널리 보급되었는데 지금까지 전해진 「농부가」는 그 변종이 일곱 가지나 된다. 그 중 중국 한인[조선족]들 사이에서 비교적 널리 애창된 「농부가」 가사 두 곡과 한반도전라도에서 유행하였던 「농부가」 가사 한 곡을 아래에 기록한다.
「농부가」 1
농부일생은 무한이라네
춘경춘수는 년년이로다
허널널 허널널이 상사나 듸야
가지나무 수절절이
노다노다 가오
염제신농씨 내신 법은
천하지대본이 농사로다
허널널 허널널이 상사나 듸야
가지나무 수절절이
노다노다 가오
사래 길고 장찬 밭을
어느 농부가 갈아줄가
허널널 허널널이 상사나 듸야
가지나무 수절절이
노다노다 가오
「농부가」 2
농부 농부야 우리 집 농부야
농부 일생이 무한일이드냐
어널널 저널러리 상사나 되어
가지나 저리절사 농사로다
염제신농씨 내시는 법은
천하에 대본은 농사로구나
어널널 저널러리 상사나 되어
가지나 저리절사 농사로다
칠대장손을 병들여 놓고
삼신산으로 약 캐러간다
어널널 저널러리 상사나 되어
가지나 저리절사 농사로다
가면가고요 오며는 오지
저달이 지도록 노다나 갑세
어널널 저널러리 상사나 되어
가지나 저리절사 농사로다
이포 저포는 양대나포야
이름이 좋아서 마산포로구나
어널널 저널러리 상사나 되어
가지나 저리절사 농사로다
팔월 국화는 다 돌아가고
구월 국화는 돌아들 온다
어널널 저널러리 상사나 되어
가지나 저리절사 농사로다
(박정렬 창 조성일 수집)
「농부가」 3
어여 허여허여루 상사디여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을 들어보소
어루와 농부님 말 들어요
전라도라 하는데는 신산이 비친 곳이야
이 농부들도 상사소리를 메기는데
각기 저정거리고 너부렁거리네
어여 허여허여루 상사디여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 들어보소
어루화 농부님 말 들어요
남훈전 달 밝은데 순 임금의 놀음이요
학창의 푸른 대솔은 산신님의 놀음이요
오륙월이 당도하면 우리 농부 시절이로다
패랭이 꼭지에다 가화를 꽂고서 마구잡이 춤이나 추어보세
(전라도 민요)
「농부가」는 조선 민족의 농경 생활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일년지계는 봄에 달려있어 농부들은 봄철 일손을 다그친다. 선사 시대에 농사법과 약초 사용법을 발명하였다는 중국의 전설적 임금인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를 농사의 신으로 간주하며 농사를 천하지대본이라 하여 일년 사시사철 농사에 힘쓴다. 그리고 농사는 대대손손 이어지는 생계지책(生計之策) 이기에 자손들이 병들면 출산을 관장하는 삼신에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19세기 말엽 한인의 이주와 함께 중국 땅에 뿌리내린 「농부가」는 1970년대까지 한인[조선족] 집거지의 농촌에서 광범위하게 유행하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시기에 외래문화가 침투하면서 「농부가」를 포함한 고유의 민요들은 젊은 층에게 불려지지 않게 되었다. 21세기에 이르러 「농부가」를 포함한 고유의 민요는 예술 학교나 예술 단체들의 공연에서 불려지고 있으며 노인들이나 일부 중년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유전되기도 하였으나 청소년들은 거의 선호하지 않는 상태이다.
현재 민족 고유의 전통을 살리기 위하여 조선족 학교에서 고유의 민요를 배우는 열풍을 진작하려 노력하고 예술 단체에서 판소리나 잡가 등 전통적인 형식으로 연창되고 있기도 하지만, 민요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창작하여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농부가」는 그 역사가 매우 유구하고 대중들 사이에서 깊이 뿌리내린 한민족의 구전 민요이기에 대중성을 많이 띠고 있으며 내용과 구성면에서 농민들의 농경 생활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농부가」를 통하여 우리는 조선 민족의 근면하고 낙천적인 특성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 작품은 조선 민족의 구비 문학과 민속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