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재주있는 兄弟形 說話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민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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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형제 |
| 모티프유형 | 재주있는 형제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정착한 한인[조선족]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신주형(神呪型) 형제 민담.
「재주있는 형제」 설화는 모두 신비한 재주를 가진 여러 형제들이 감옥에 갇힌 한 형제를 구하기 위하여 차례차례 재주를 부려서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아주 신비하면서도 재미나는 이야기이다. 비교적 특징적인 「재주있는 형제」 설화는 중국의 「10형제」 설화와 한반도의 「재주있는 6형제」 설화이다. 한민족의 「재주있는 6형제」 설화는 또한 「4형제의 재능」, 「재주있는 3형제」, 「재주있는 8형제」 등으로 변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특색있는 6형제」 설화나 「10형제」 설화는 서양의 「여섯 사람이 천하를 주름잡되 만사가 여의하다」 설화가 동양에 전파되어 변형된 설화이다. 그리고 서양의 「신비한 재주를 가진 4형제」 설화에서 「여섯 사람이 천하를 주름잡되 만사가 여의하다」 설화가 파생되었거나 일정한 영향 관계가 있는 것이다.
중국 한인[조선족]의 구전 설화에서 「재주있는 형제」 설화가 포함되어 있으며 민간에 널리 유전되었다. 1954년에 민간 이야기 구술가인 김광희에 의해 구술되었고 민간 문학 연구자 정길운에 의해 채록되어 민간 이야기집 『백일홍』[길운 정리, 연변인민출판사, 1979]과 『길림성 민간 문학 집성-연변조선족자치주 이야기편』 하권[연변조선족자치주 민간 문학 집성 편집 위원회, 1987]에 수록되었다. 그리고 『조선 옛말 365켤레』 제2집[김형직·윤봉현 저, 요령인민출판사, 1985]에 「삼형제」란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6형제」
어느 한 곳에 일 솜씨가 좋기로 아침밥을 안쳐놓고 밥이 되는 사이에 삼밭에 달려가서 생삼을 가져다 가마에 쪄서 실을 뽑고 그 실로 보름새 삼베를 짜는 처녀가 있었는데 역시 일 솜씨가 뛰어난 신랑을 얻으려 하였다. 한 총각이 와서 식전에 벼 모 열 마지기를 꽂았으나 삿갓 밑에 벼 모 열 포기를 꽂지 않은 실수를 했기에 거절당하였다. 두 번째 총각은 벼 포기 한 대가 물 위에 떴기에 거절당했다.
처녀가 남장을 하고 신랑감 구하러 길을 떠났다가 한 산우에서 먼저 번 두 총각을 만났는데 그 중의 하나에게 떠밀려 벼랑 밑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마침 벼랑 밑 대장간에서 낫을 벼리던 총각이 있었는데 낫을 먼저 벼려가지고 백두산 기슭의 싸리 밭에 가서 싸리나무를 한단 베여 와서 큰 광주리를 엮어 처녀를 얼른 광주리에 받아 안았다.
총각과 처녀는 부부를 맺고 아들 6형제를 낳았는데 저마다 천성적으로 비범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이들 6형제의 이름은 재주에 따라서 지었는데 맏이는 ‘천리안’이고 둘째는 ‘딸깍 열쇠’이고 셋째는 ‘잘라도 돋으니’이고 넷째는 ‘더워도 차가우니’이고 다섯째는 ‘깊어도 얕으니’이고 막내는 ‘눌러도 솟으니’였다. 세월이 흘러 이들 6형제는 덜먹 총각으로 자라났다. 집안 살림은 원래 괜찮았고 또한 6형제가 모두 재주가 있어서 재물을 많이 모여지고 생활은 날마다 부유해졌다.
이때 고을에는 새 사또가 부임되어 왔는데 겉보기에는 점잖은 것 같지만 속은 매우 음흉하였고 탐욕스러웠다. 부임되는 날에 지령을 내려 여러 마을의 부호들이 모두 와서 배알하게 하였다. 6형제의 부친도 불려서 관아에 가게 되었다. 늙은 대장장이는 관아에 들어서자 물매를 얻어 맞았다. 사또는 ‘너의 죄를 아는가’ 고 물었다. 대장장이가 자기는 무슨 죄를 졌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사또는 대노하여 대장장이를 옥에 가두게 하였다. 맏이인 천리안이 이 소식을 듣고 재물을 협잡하려는 심사를 알아차렸다.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하여 여섯 형제는 돈을 마련하여 관아에 가져갔다. 헌데 그 사또는 가져온 돈이 적다고 하면서 받으려 하지 않았고 되려 대장장이를 끌어내서 또 한바탕 두들겨 팼다. 여섯 형제는 집에 돌아온 후 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 자기네들의 재주로 아버지를 구하려고 작심했다.
이날 밤 맏이가 천리안으로 내다보니 옥졸들이 모두 술마시러 나가고 없었다. 그래서 둘째인 딸깍 열쇠와 막내인 눌러도 솟으니를 시켜 아버지를 구하게 했다. 눌러도 솟으니는 딸깍 열쇠를 엎고 잠간 새에 옥문 앞에 이르렀다. 과연 옥졸들이 보이지 않았다. 딸깍 열쇠가 손을 대니 ‘딸깍’하고 자물쇠가 열리였다. 눌러도 솟으니는 아버지와 딸깍 열쇠를 엎고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금방 집에 들어서자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이면서 옥졸들이 뒤쫓아 와서 대장장이를 다시 붙잡아서 옥에 가두었다. 사또는 대장장이가 탈옥죄를 범했다 해서 다음 날 참수한다고 선포하였다.
이날 밤 맏이는 또 눌러도 솟으니, 딸깍 열쇠, 잘라도 돋으니를 보내서 옥문을 열고 아버지를 업어오고 잘라도 돋으니를 남겨 놓았다. 이튿날 처형이 시작되었다. 사또는 보니 대장장이가 아닌지라 골이 나서 대장장이 아들을 당장 참수하라고 명하였다. 그런데 칼로 목을 치면 또다시 되살아나곤 하였다. 그래서 다시 옥에 가두게 하고 다음날에 다른 방법으로 죽이려 하였다. 천리안은 이번에는 불가마에 태워 죽이는 형벌을 내릴 것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더워도 차가우니를 바꿔 보냈다.
이튿날 더워도 차거우니를 불가마에다 떠밀어 넣고 풀무를 부지런히 돌려댔다.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 연기가 자오록하였지만 가마 안에는 흰 서리가 끼얹었으며 더워도 차가우니는 추워서 덜덜 떨고 있었다. 사또는 대경실색하면서 방법을 바꾸어서 물에다 빠뜨려 죽이려 작심했다. 천리안은 또 그것을 보아내고 깊어도 얕으니를 바꿔 보냈다. 이튿날에 깊은 강물 속에 깊어도 얕으니를 던져 넣었다.
그런데 강물은 그의 발목에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소용돌이치는 더욱 깊은 물속에 집어넣었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으며 웃으면서 발목을 치는 강물을 왔다 갔다 하였다. 사또는 너무도 분통이 터져서 대장장이 온 집 식구를 모조리 붙잡아서 큰 바윗돌로 눌러 죽이려 하였다. 그런데 눌러도 솟으려는 집 채 만 한 바위 돌을 등에 지여서 관아의 문 앞을 가로막아놓고 집식구들은 모시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사또는 아무리 궁리하여도 이들 6형제를 다스릴 방도가 떠오르지 않다가 눈앞을 가로막은 큰 바위돌을 보고 그들이 보이지 않으니 반드시 죽었을 것이라고 판정하고 헤헤 웃으면서 한 마리 뱀처럼 스르르 돌아와 버렸다.
「재주있는 형제」 설화에서 기본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재주있는 6형제」 설화이다. 기능 구조를 보면 아래와 같다.
제시부, 재주있는 형제들이 있는데 진둥만둥이를 보내어 부자집 재물을 훔치다 발각되어 옥에 갇힌다.
전개부, 관청에서 진둥만등이를 죽이려고 할 때마다 만리보기 천리보기가 미리 알고 딸깍 열쇠를 보내 옥문을 열고 재간에 따라 형제들을 바꿔낸다.
관청에서 목을 베어 죽이려 하나 자른둥만둥의 목은 베면 또 새로 돋아난다.
관청에서 연자매에 넣어 갈아 죽이려 하나 줄었다늘었다는 죽지 않는다.
벼랑에서 굴려 죽이려 하나 올리치기내리치기는 죽지 않는다.
끓는 기름 가마에 넣어 죽이려 하나 더우니차가우니는 춥다고 한다.
물에 빠뜨려 죽이려 하나 깊으니얕으니는 얕다고 하면서 나온다.
소멸부, 관청에서 죽일 방법이 없어서 놓아주어서 형제들은 잘 살았다고 한다.
다른 「재주있는 6형제」 설화에서는 결말에서 재간 있는 형제들을 죽이려고 하던 관리가 물이 진짜로 얕은가를 보기 위하여 바다에 들어갔다가 빠져죽는 경우도 있다.
「재주있는 6형제」 설화에는 제시부에 중국의 「10형제」 설화처럼 신비한 재주를 가진 형제들의 출생담이 첨가되지 않았다.
중국 한인[조선족]의 「6형제」 설화는 한반도의 「재주있는 6형제」 설화와 일정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6형제」 설화는 중국 한인이 19세기 말부터 중국에 이주해오면서 가지고 들어온 설화에서 변이된 것이다. 전개부와 소멸부는 한반도의 「재주있는 6형제」와 세절적인 면에서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중국에 들어온 후 제시부에 총각처녀 결연담 및 재간 있는 6형제가 태어나는 과정이 첨가됨으로써 제시부에 구자(求子)형 모티프가 첨가된 중국의 「10형제」 설화의 특징을 아울러 띠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