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夜來子形 說話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정착한 한인[조선족]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변신 설화.
「야래자」형 설화는 처녀[혹은 과부 또는 유부녀]가 밤이면 찾아오는 정체모를 사나이와 동침하여 임신하는데 비범한 아이를 출산하였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이는 한반도·중국 대륙·일본 열도와 베트남·몽골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 널리 퍼져있다. 한국에서는 일명 ‘견훤식 전설’, 일본에서는 ‘미와야마 전설’[혹은 실꾸리형 뱀사위담]이라고 부르며 중국에서는 보통 ‘노라치[수달]형 전설’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조사·발굴된 「야래자」 설화의 총수는 200여 편이 넘는다. 즉 한반도에 42편, 일본 열도에 138편, 중국 대륙에 26편, 베트남에 1편, 몽골에 1편 남부 슬라브족 구전 설화 1편 등이 있다.
이런 다양한 「야래자」 설화의 형태를 구분해보면 기본형·확장형·복합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기본형은 단순 야래자형으로 불리는데 야래자의 신분 확인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기본형에 ‘천자터 쟁취’라는 제2 주인공의 과제 성취가 결합된 것이 확장형이다. 기본형·확장형에다 ‘천자검 획득’이란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어 제2 주인공의 아들이 임금이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마련하게 하는 복합형이 있다.
중국 한인[조선족]이 살고 있는 길림성 용정시 삼합진을 경유하는 두만강 유역에 「야래자」형 설화가 존재한다. 1989년에 김재권이 채록한 「한왕 전설」과 「한왕산 이야기」, 1980년에 안화춘이 채록한 「오랑캐령의 전설」 등이 있다. 그리고 「황구연 전집7-향토이야기 편」[김재권 정리, 연변인민출판사, 2008]과 「두만강 류역 전설집」[한정춘 정리, 연변인민출판사, 2010]에 각기 수록되어 있다.
「오랑캐령 전설」
두만강 이북에는 오랑캐령이란 고개가 있는데 유래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곳에는 원래 이좌수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나이가 찬 딸이 하나 있었다. 밤마다 정체모를 사나이가 처녀의 방에 들어와서 자고 갔다.
얼마 후 처녀는 태기가 있어 아버지에 문초를 당하였다. 처녀는 자기가 당한 사실을 그대로 아뢰었다. 이좌수는 딸에게 밤에 찾아오는 사나이의 옷단에 명주실을 꿴 바늘을 꽂으라고 명하였다.
사나이가 다녀간 다음날 아침 명주실을 따라가 보니 실마리가 늪에 들어가 있었다. 늪의 물을 다 퍼내고 보니 그 안에 바늘이 꽂힌 수달이 누워있었다. 처녀는 만삭이 되어 아들을 낳았는데 수달의 자식이라 하여 노라치라 불렀다.
수달은 워낙 짐승의 노린내가 나서 입과 네 발톱에 다섯 개의 주머니를 씌웠다. 그런 까닭으로 수달 부자가 드나들던 고개를 오랑(五囊)캐령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왕 전설」
용정시 삼합진에서 두만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지 바위가 솟아있고 그곳에서 좀 더 올라가면 유서 깊은 한왕산이 있다. 먼 옛날에 이곳에 늙은 부부와 무남독녀 세 식구가 오붓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집안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였다. 시집을 가지 않은 외동딸이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는데도 임신하였던 것이다. 늙은 부부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딸에게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딸은 할 수 없이 바른대로 말씀을 드렸다. 몇 달째 한밤중에 비몽사몽간에 웬 총각이 뒤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정을 나누고 새벽이면 가버린다고 하였다.
딸은 어머니가 시킨 대로 몰래 명주실을 준비했다가 한밤중에 찾아온 총각의 다리에 매어놓았다. 이튿날 날이 밝자 명주실을 따라 가보니 명주실은 오지 바위 밑에 이르러서는 두만강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총각이 물에 빠져 죽은 줄로만 알고 돌아왔다. 달이 차서 딸은 해산하였는데 울음소리가 우렁찬 남자애였다. 애의 이름을 바위 이름을 따서 오지라고 불렀다. 세월이 흘러 오지가 열 살이 되었다. 오지는 어머니에게 조상이 누구냐고 캐물었다.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모든 사연을 말해주었다.
오지는 단숨에 오지 바위 밑으로 달려가 명주실을 따라 물속에 들어가 아버지 뼈를 찾았다. 오지가 명주실에 매어있는 뼈를 보니 사람의 뼈가 아니라 도롱룡의 뼈였다. 오지는 자기가 도롱룡 자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지의 후손이 왕이 되었는데 그를 한왕이라 하였다.
「야래자」 설화는 원형을 기초로 여러 변형들이 존재한다. 첫째, 주인공은 대개 외동딸이다. 주인공이 과부·유부녀·할머니 등으로 된 것은 변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변신한 사나이는 밤에 와서 동침한다. 낮에 만나서 직접 동물과 정을 나눴다는 설화는 변이된 형태이다.
셋째, 사나이의 정체를 확인하는 주요한 수단은 바늘을 목에 찌르거나 바늘실을 옷단에 꿰매는 것이다. 바늘실이 결여된 설화는 변이 혹은 축약된 형태일 것이다. 넷째, 확인된 사나이의 정체가 수족류[수달·거북]로 되어 있는 것이 원형에 가깝고 양서류[뱀·개구리 등]나 지상 동물[지렁이·굼벵이·모충 등], 식물 요정[하수오·삼목·버드나무·참외 등]은 변이된 형태일 것이다.
다섯째, 물속의 영물에 아버지의 뼈를 발견하는 것은 용이나 용혈이 원형에 가깝고 와룡석·물소·신마(神馬)는 일차적 변이 형태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뼈를 용의 입안에 넣었다는 것이 원형이고, 뿔에 걸어놓았다는 화소는 일차적으로 변이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여섯째, 수달의 아들이 천자가 되었다는 송나라 태조 출생담이 수달의 셋째 손자가 천자가 되었다는 청나라 태조 출생담보다 설화의 원형에 가깝다. 일곱째, 중국의 삼합, 조선의 회령을 중심으로 한 두만강 양안에서 발생한 「야래자」 전설에는 제2 주인공 노라치와 종성녀가 오줌싸기 시합으로 혼인을 정하는 모티프가 있는데 이런 부부 시합 화소는 훗날에 가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덟째, ‘천자검 획득’ 모티프는 한반도와 베트남 지역에서 전승되는 구전 설화이다.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이었던 두 나라 민족의 정치적·군사적 경계심에서 만들어져 점차 부여된 것이다. 다만 화소가 첨가된 복합형은 원형과 따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구전이나 문헌을 막론하고 「야래자」 설화는 보통 주인공의 이름과 사건의 발생 시간, 장소가 제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후백제 왕 견훤에 대한 설화가 구두와 문헌으로 모두 전하는 대표적인 「야래자」 설화이다. 문헌은 『삼국유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때문에 견훤 관련 「야래자」 설화는 발생 연대를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야래자」 설화는 먼저 황하 이북의 유목 문화권에서 발생하여 남방 농경 문화권으로 이동하면서 동아시아 범민족의 분포를 형성하였다. 혼인 풍속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야래자」 설화는 북방 유목 민족들 사이에서 일찍 행해지던 서옥제·처자집·거주혼·봉사혼 등 모권제 시대의 유풍을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