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농기구
재질 돌|나무|쇠
용도 제분|탈각|정곡
정의

길림성 지역 한인들이 곡식의 껍질을 벗기거나 곡식을 빻아 가루를 내는 데 쓰는 기구나 설비.

개설

방아의 종류로는 발로 디디는 디딜방아[발방아], 돌절구와 공이로 구성되어 돌방아라고도 하는 절구, 수력을 이용하는 물레방아와 물방아, 축력을 이용하는 연자방아 따위가 있다.

연원 및 변천

방아는 갈돌에서 비롯되었다. 그 변천 계열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한 가지는 갈돌에서 돌확, 맷돌, 매통, 토매, 연자매로 발전한 무리이고, 다른 한 가지는 갈돌에서 절구, 디딜방아, 물방아, 물레방아로 발전한 무리이다. 앞의 계열은 곡물을 위와 아래의 사이에 놓고 으깨어 가는 연장이고, 뒤의 계열은 공이로 내리쳐서 찧는 연장이다. 이 중 방아는 주로 뒤의 계열에 속한 기구들을 가리키지만, 연자매는 앞의 계열에 속하면서도 ‘연자방아’로도 불린다.

방아는 곡식을 주식으로 하기 시작한 때에 출현했다고 생각된다. 한민족은 기원전 6~7세기경에 농경 생산을 시작했고 기원전 2~3세기경에 벼를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3~4세기경 벼 농사가 보편화되었으므로 방아의 도입은 이 사이의 일일 것이다. 산업화 이전 시대에 방아는 맷돌과 함께 곡물 가공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집집마다 방앗간을 설치하고 디딜방아를 걸었으며 또한 작은 맷돌과 절구를 갖추고 있었으므로 소량의 곡물 가공은 일상적으로 가내에서 이루어졌다. 대량의 가공을 위해서는 마을마다 연자방아와 물레방아를 설치했다. 부유한 집에서는 단독으로 연자방아나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남의 것을 가공해 주고 가공비를 양곡으로 계산하여 받기도 했다.

연변조선족자치구에서 방아와 맷돌은 1950년대 초까지 사용되고 있었다. 이후 기계를 사용하는 정미소가 농촌에 도입되면서부터 연자방아와 물레방아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여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디딜방아는 좀 더 오래 사용되다가 1970년대 말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현재에도 간혹 쓰이는 곳이 있다. 큰 절구는 방아와 함께 쇠퇴하였지만 작은 절구는 도시나 농촌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가내에서 여러 가지 양념을 가공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형태

나무로 된 절구는 떡메가 일자형이 아니라 T자형으로, 주로 떡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떡메 길이는 90㎝, 공이 길이는 45㎝ 정도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방아와 맷돌은 손재주 있는 석수장이가 아니라도 만들 수 있었다. 주로 필요한 큰 돌을 선택하여 정으로 쪼아서 만들었다. 맷돌과 방아는 보통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고 팔거나 사지는 않았다. 나무로 된 절구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직접 제작한 것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민들이 필요한 농기구를 많이 만들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박경휘, 『조선족 민속사 연구』(요령민족출판사, 1988)
  • 북경 대학 조선 문화 연구소, 『중국 조선 민족 문화사 대계 7. 민속사』(연변대학, 2000)
  • 김선풍·정형호 외, 『재중 교포의 민속-경기 출신 집단마을 조사 보고서-』(국립 문화재 연구소, 2002)
관련항목
관련 웹사이트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