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巫堂 |
|---|---|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길림성 지역 한인 사회에서 신을 섬기며 길흉화복을 점치고 굿을 주관하는 사람.
무인(巫人)·무(巫)·무격(巫覡)·무녀(巫女)·단골·심방이라고도 하며, 특히 남자 무당을 지칭할 때는 격(覡) 또는 박수, 화랭이, 양중이라고도 한다.
무당은 춤을 통해 무아의 경지에 돌입하고 탈혼(脫魂)의 과정을 거쳐 신과 접한 뒤, 신탁(神託)을 받아 반신반인(半神半人)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당은 인간의 소망을 신에게 고하고, 또 신의 의사를 탐지하여 인간에게 계시해주는 영매자(靈媒者)로서의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 부족 국가 때부터 무는 곧 ‘군(君)’인 동시에 신과의 교섭자라는 위치에 있었고, 그 활동은 초인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무인의 직능은 신열(神悅)[ecstasy]을 공동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 활용할 줄 아는 신성(神聖)의 전문가로서의 역할이었다.
이와 같은 무인의 직능은 삼한(三韓) 여러 나라의 천군(天君)이나 부여의 영고(迎鼓), 예(濊)의 무천(舞天) 등 국가적 대제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의 무인은 일반인들과는 구별되는 초인적 이질성을 부여받은 자로 보통 인간이 미칠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영매자이기도 하다. 그 개념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무당은 성무 과정(成巫過程)의 시초에 신의 초월적인 영력을 체험하는 신병(神病)을 거친 사람이어야 하며, 둘째, 무당은 신병을 통하여 얻은 영통력으로 능히 신과 만나는 종교적 제의인 굿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셋째, 앞의 두 가지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민간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종교적 지지를 받아 민간층의 종교 지도자로 인정을 받은 사람이어야 하며, 넷째, 무당은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이 분명하여야 한다. 성무 초기에 어떤 신을 어떻게 체험하였으며, 그 신을 어떻게 신앙하느냐 하는 것이다. 무당이 체험하는 신은 일반적으로 산신·칠성신·지신·용신 등의 자연신, 또는 장군신·대감신·왕신 등의 인격신 가운데 하나인 경우가 많다.
중국으로 이주한 한인들에게 광복 전에는 이러한 무속 신앙이 매우 보편적으로 존재하였으며, 한국의 경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한인의 무당은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무당은 지역과 성별을 초월한 명칭이라 할 수 있는데, 전통 시대의 문헌에는 사제자로서의 무당이란 표현이 없어 언제부터 사용된 호칭인지는 알 수 없다. 이들은 선령이나 악령을 불문하고 교통하여 그것들을 다룰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고, 이러한 능력을 토대로 인간과 신령의 세계를 매개함으로써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의하면 ‘무’는 춤을 통하여 신을 접하기 때문에 ‘공(工)’자의 양측에 두 사람이 춤을 추는 형상을 취한 ‘무(巫)’자를 쓰게 되었다고 하였다.
무당은 특수한 기능을 갖고 있는 사람과 영혼의 중계자로서 굿이라는 종교 의식을 통하여 사람의 병을 치료하거나, 점복(占卜)을 통하여 길흉화복을 예측한다. 조선족들은 점복을 하는 사람을 ‘점쟁이’ 혹은 ‘복술쟁이’라고 불렀으며, 광복 후 이러한 무당과 점복 활동은 금지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복 활동은 다시 나타나고 있지만, 무당은 매우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