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상장례

한자 現代 喪葬禮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정의

현대 중국 동북3성 지역 한인의 상장례.

개설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기점으로 한인[조선족]의 상장례는 크게 변화하였다. 기본적으로 묘를 쓰지 않고 화장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제사도 없어졌다. 망자의 운명 후 초종(初終) 절차가 간소화되어 고복이나 사자상 차리기 등은 없어지고, 염습 절차도 크게 간소화되었다.

절차

가족 중 누군가의 임종이 가까워지면 임종할 자리를 택하고 직계 자녀에게 알려 모두 이를 지켜보게 한다. 환자인 경우나 위독하여 입원 한 경우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되나 여전히 집에서 임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운명을 하면 바로 몸을 씻기고, 준비해 두었던 수의를 입힌다. 시신을 요위에 눕히고 흰 천으로 덮는다. 대부분 소렴과 대렴의 절차가 생략되고 염습만을 간략하게 한다. 농촌에서는 상주들이 전통적인 상복으로서 굴건제복을 착용하기도 하며, 부모상에는 지팡이를 짚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일반적으로 양복을 입고 팔에 삼베 띠를 두른다. 머리에 건을 쓰는 사람도 있고 쓰지 않는 사람도 있다. 여자들은 흰색의 상복을 입고 머리에 삼베보를 쓰고 띠를 두른다.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신 앞에는 흰색의 초장을 치고 그 위에 영정을 걸어놓는다. 그 앞에 작은 상을 차리고 과일을 놓고 향을 피운다. 문상객이 오면 상 앞에서 곡을 하고, 향을 피우며 절을 한다. 문상하는 사람은 술 2병을 부조로 가져오는데, 이는 중국식 예절이다. 간혹 문상객이 상주와 친한 사이인 경우 같이 밤샘을 해 준다. 상주는 병원에서 발급하는 사망 통지서를 받아 인근 파출소에 제출하는데, 사망 신고와 더불어 식량증 지급이 중지된다.

임종 다음날은 입관식을 거행한다. 준비된 관에 시신을 모실 때 상주들은 통곡을 한다. 대렴을 하지 않기에 관 아래에 요를 깔고 시신을 모신 후 위에 흰 홑이불을 덮으며 약간의 보공(補空)을 하는 정도로 진행된다. 관뚜껑은 바로 닫지 않는다. 중국식으로는 시신이 보이는 상태로 추도식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바로 화장을 하기에 굳이 비싸고 좋은 재질로 만든 관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장례는 삼일장이 일반적이나 병원에서 임종하였을 경우 당일장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출상 당일 영구차에 시신을 싣고 화장터로 간다. 화장에 들어가기 전 관위에 사진을 놓고 추도식를 연다.

추도식이 끝나면 바로 화장을 진행한다. 재가 되어 나온 뼈를 거두어 단지에 넣고 골회 보관처에 봉안한다. 골회 보관처의 보관함에는 각기 일련번호가 주어지는데, 망자의 사진을 보관함과 같이 봉안한다. 골회 보관처에는 3년간 골회 단지를 보관할 수 있다. 3년 후에는 단지를 꺼내어 재를 강물에 뿌린다. 경우에 따라 화장 당일 재를 강이나 산에 뿌리는 경우도 많다.

중국에서 화장을 장려하기 시작한 것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 부터이다. 그 후 문화대혁명을 전후로 하여 상례의 절차가 크게 바뀌고 화장의 필요성도 강조되었다.

참고문헌
  • 『중국 길림성 한인 동포의 생활문화』(국립 민속 박물관, 1996)
  • 이광규, 『재중 한인-인류학적 접근』(일조각, 1997)
  • 강위원, 『조선족의 오늘』(도서 출판 신유,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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