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中國 朝鮮族 文學에 나타나는 朝鮮族의 正體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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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중국 한인[조선족]은 한반도에서부터 건너온 조선인 농민들이 주로 중국 동북 지방에 정착한 이민 공동체에서 형성, 발전되어온 민족 공동체이다. 중국 한인[조선족]은 식민지 시대 강제징용이나 유학으로 정착한 재일 조선인, 도시민과 지식인을 주축으로 하는 재미 한인, 광부나 간호사로 파견되어 정착한 재독 한인 등의 해외 한인들과 다르다. 특히, 중국 한인[조선족]은 1937년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동으로 모국과 멀리 떨어지게 된 고려인들과 이민 초기에는 유사한 모습을 보였지만 현재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중국 한인[조선족]의 정체성은 벼 농사를 주축으로 하는 농촌 공동체를 토대로 하여 형성되었다. 하지만, 1978년 개혁개방 이후 한인[조선족] 사회는 전통적 농업 사회에서부터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국제화, 세계화로 인한 다문화 시대는 한인[조선족]에게 양가적 의미를 지닌다. 중국 내에서 소수자로 동화의 위험에 직면해있던 한인[조선족]은 세계화, 국제화, 다문화 시대의 충격 속에서 많은 것을 얻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잃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조선족 농촌 공동체의 와해와 붕괴가 초래한 정체성의 위기 상황은 심각하다. 이러한 상황은 개혁개방 후기 중국 조선족 문학에서 정체성에 대한 모색으로 나타난다.
1978년에 시작된 개혁개방은 모택동 시대의 종언과 등소평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개혁개방 전기는 1978년부터 1990년까지의 시기를 가리키며 이 시기 동안 중국 한인[조선족] 사회는 전통적인 농업 사회로부터 도시 사회로 점진적으로 이행해갔다.
1) 역사소재 소설에서의 민족 정체성 모색
1958년 ‘지방 민족주의’를 숙청하기 위해 벌였던 ‘민족 정풍(民族整風)’과 문화 대혁명 기간 ‘민족문화 혈통론’에 대한 비판 이후 중국 조선족 문단에서 한인[조선족]의 민족적 정체성을 거론하는 것은 금기시 되었다. 그러나 사상 해방과 자유를 강조한 개혁개방 이후 중국 조선족 문학에서는 이민사에 대한 재현을 통해 한인[조선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김학철[1916―2001]과 이근전[1929―1997]의 창작을 들 수 있다.
이근전의 장편 소설 『고난의 연대』(1984)는 1950년대 초기부터 구상되었지만 개혁개방을 맞이하여 집필할 수 있었다. 이근전은 다음과 같이 작품의 창작 동기를 밝힌 바 있다.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를 진정으로 앎으로써 오늘 우리 민족이 반드시 서야 할 위치를 자각하게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한인은 조선에서 살 수 없어 쪽박을 차고 중국에 밥을 빌어먹으러 건너왔다고 하는데 이는 편면적(片面的)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자고로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우선 대자연과 싸웠고 봉건계급과 관료아치들과 투쟁하여 왔으며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여러 민족이 어깨 겯고 싸워 중국의 근대사를 여러 민족 인민들과 함께 썼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울 수 있는 기초를 여러 민족들과 함께 닦아 놓았고 동북에 벼 농사 기술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민족의 넋을 지키고 노래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이근전은 “조선족 인민들이 조선에서 중국 동북에 이주하여 뿌리를 내리게 된 연유와 과정 및 조선족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반영하였으며 점차 자기의 처지를 인식하고 자기의 힘을 키우면서 중국 공산당의 정확한 영도 밑에서 형제 민족 인민들과 단결하여 반일 투쟁에로 궐기된 피어린 역사를 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하였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근전은 『고난의 연대』에서 중국 한인[조선족]의 개척사와 투쟁사를 여러 방면에서 재현함으로써 고난으로 점철된 장기간의 투쟁을 펼쳐온 한인[조선족]이 중국에서 살아 갈 자격과 권리를 갖추었음을 보여주었다. 북간도로의 이민 후 황무지를 개간하고 청의 동화 정책에 맞선 ‘박천수’나 중국 공산당원이 되어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는 ‘박윤민’ 등은 한인[조선족]이 중국에서 자기의 문화를 지키면서 한인[조선족]답게 살아갈 권리와 자격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 소재의 장편 소설들은 최홍일의 『눈물 젖은 두만강』(1999), 최국철의 『간도 풍운』(2005)에까지 이어졌다.
2) 현실을 재현한 소설에서의 민족 정체성 모색
역사 소재의 작품과 함께 현실을 재현하는 소설들은 개혁개방 이후 새로운 환경 속에서 개화기를 맞이하였다.
ㄱ. 김학철의 현실 비판적 문학에 나타나는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
김학철의 문학은 노신의 문학과 마찬가지로 불의에 대한 저항과 비타협을 특징으로 한다. 노신의 비판이 과거의 중국 문화에 대한 것이었다면 김학철의 비판은 “선량한 사람들, 무고한 사람들을 수없이 옥사(獄死), 형사(刑死), 아사(餓死)시킨 장본인들. 그 장본인들을 단죄하는 데는 시효도 국경도 있을 수 없다”라는 말로 집약된다. 김학철 문학에서 나타나는 비판적 성향은 그의 이중적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김학철의 이중적 정체성은 민족과 공산당을 동시에 지향했던 조선 의용대 시절부터 형성되었다. 김학철은 민족주의 정당이었던 조선 민족 혁명당의 당원으로서 조선의 국권 회복을 위해 싸웠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 서울에서는 남로당 당원이었고 월북 후에는 조선 노동당 당원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는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또한 그는 1940년에 입당한 중국 공산당원이자 팔로군 간부로서 일제와 싸운 항일 투사이기도 하였으므로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었다. 김학철은 중국과 조선에 대해 모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으며 중국과 조선의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한 바 있다.
다양한 정체성에 기반한 김학철의 비판은 1982년 조선에서 중국으로 국적을 옮기고 1989년 조선 노동당원 자격을 포기하며 중국 공산당 당적을 회복한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이 때문에 김학철은 복권 후에도 문필활동에서 많은 제약을 받아야 했으나 계속해서 사회의 불의에 저항하였다.
김학철은 중국으로 국적을 옮기고 중국 공산당원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이중적 정체성을 염두에 두며 한반도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자 했다. 김학철은 자신의 발언권을 “우리(조선 의용군)가 지난날 일본군에 대항해 싸울 때 조선 반도는 하나였다.”라는 말로 대변한다. 마찬가지로 김학철은 중국에 대해서도 발언권을 당당하게 주장했다. 1964년에서 1965년 사이 김학철은 『20세기의 신화』를 창작하여 계급 투쟁 확대와 개인숭배뿐 아니라 그로 인한 “반우파 투쟁”에서의 지식인에 대한 부당한 처사와 탄압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로 인해 10년간 옥살이를 하였지만 김학철은 복권 후에도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ㄴ. 김성휘의 시 창작에서의 민족 의식의 소생
극좌 노선이 중국을 지배하고 있던 시기 중국 조선족 시단의 시인들이 표현할 수 없었던 진실한 감정도 개혁개방 이후에는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전형적인 사례로 김성휘를 들 수 있다.
김성휘의 작품들은 이전에 보여주었던 찬양조의 송가 양식과 과장된 시 의식을 탈피하고 서정적이고 내면화된 어조로 일상적 삶의 정서를 담아내었다. 개혁개방 이후 김성휘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내용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민족 의식이었다. 『들국화』(1982), 『금잔디』(1985), 『흰 옷 입은 사람아』(1987), 『고향생각』(1989) 등에 실린 대부분 작품들은 어머니와 고향 그리고 시인의 민족 의식의 소생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어머님이 지어주신/ 흰 옷 입고 창가에 앉았다/ 밝은 해빛 따사롭고/ 마음 한구석은 차겁다/ (생략) /차라리 우리 어머님 나에게/ 검은 옷 지어 주셨다면/ 나도 그늘 밑에 시름없이 뒹굴며/ 도야지 개 신세로 살아가련만/ 아니 못한다/ 나는 죽어도 골백번 죽어도/ 어머님 베틀에 짜주신/ 흰 옷은 벗지 못해/ 흰 옷 입고 창가에 앉아/ 깊은 산 외진 하늘 아래/ 형제를 그리며 슬피 묻노라/ 흰 옷의 검은 때 언제면 벗으려.” ―김성희, 「흰 옷 입은 사람아」(1987)
「흰 옷 입은 사람아」에서 어머니가 지어주신 ‘흰 옷’은 한인[조선족]의 민족적 뿌리를 암묵적으로 드러내며, 어머니로 비유되는 모국과 백의민족을 의미하는 ‘흰 옷’이라는 고유한 문화적 상징을 통해 잃었던, 혹은 잊고 있었던 한인[조선족]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시인의 자각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조선족 시문학에서 흰색 이미지는 민족의 상징으로 표출되는 바, 이러한 흰색 이미지에 대한 꾸준한 시적 관심은 윤동주의 「슬픈 족속」(1938)으로부터 시작하여 김성휘의 시를 거쳐 1990년대에 들어서서 한층 활발해졌다. 한창선의 「산재마을엔」, 리성비의 「우리 춤」, 「겨울소나무」, 림금산의 「하얀 집」, 김동진의 「흰 눈이 내리네」 등이 이러한 흰색 이미지를 시적으로 형상화시켰다.
“떡방아 찧는 소리 들려 오더니/ 떡가루 날렸느냐 마을에 눈 내리네/ 이쁜이가 가는 길 시집가는 길/ 하얀 눈이 내리네/ 하얀연 너울 쓰고 간다/ 령길에 눈이 내리네/ 아 아 송이송이 하얀 눈이/ 산에도 들에도 소복히 내리네/ 하늘에도 배꽃잎이 곱게 날리네/ 하늘 땅 그 어데나 흰 눈이 날리네/ 있더라도 가더라도 우리 다 같이/ 티 없이 살아보자/ 흰 눈이 내리네/ 아 아 송이송이 하얀 눈이/ 산에도 들에도 소복히 내리네.” ―김동진, 「흰 눈이 내리네」 전문
「흰 눈이 내리네」에서 형상화된 것처럼 흰색 이미지에 대한 시적 관심은 중국 한인[조선족]의 민족 체험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것으로서 민족 사랑 나아가서는 민족적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개혁개방 후기는 1990년 이후부터 2012년 현재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기에 개혁개방 노선과 정책은 한층 심화되어 한인[조선족] 사회도 농경 사회에서 도시 공업 사회로의 변화가 가속화되었다. 특히 한국과의 국교 정상화로 많은 한인[조선족]들이 한국에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한국에서 지내는 한인[조선족]이 40만 명에 이르고 중국 대도시들에 분산된 한인[조선족]이 수십만 명에 이르며 세계 각지 우리 동포들이 있는 곳에 중국 한인[조선족]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한인[조선족]들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김혁의 르포 『천국의 하늘에는 색조가 없다』, 리혜선의 르포 『코리안드림』, 김재국의 현장 르포 『한국은 없다』, 석화의 시집 『연변』 등에서는 이런 상황을 반영하였다.
조선족 소설 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에서 가장 큰 성과를 이룩한 작가로는 허연순과 박옥남을 들 수 있다.
허련순은 『바람꽃』,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 등 장편 소설들을 통해 한인[조선족]이 농촌을 버리고 도시와 세계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통해 “나는 누구이고, 나의 안식처는 어디인가?” 하는 실존적 물음을 제기한다. 허련순은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대한 열풍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흑룡강 신문』에 장편 소설 『바람꽃』을 연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귀추없이 떠돌아다니는 바람꽃, 바람이 불어왔던 곳에 바람이 지는 그곳, 두 세계 중의 어느 한곳에 머무르거나 또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도 못한 채 두 곳을 끊임없이 우왕좌왕하였다. 언제나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다른 한곳에 대한 끊임없는 추억과 망각, 그리움과 원망의 갈등을 수없이 겪으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수없이 날아갔었다. 언제나 두 세계에서 함께 공존했던 셈이고 두 세계에서 함께 탈출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나는 누구일가?”
허연순의 이러한 생각이 가장 집중적으로 체현된 작품이 2004년부터 1년 남짓 『장백산』에 연재되었던 장편 소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이다. 이 작품은 장편 소설 『바람꽃』에 나타난 디아스포라 문학적 경향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승화한 것이기도 하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에서 정처없이 표류하는 밀항선, 그리고 잃어버렸던 고향을 찾거나 돈을 벌려고 목숨을 내걸고 한국행 밀항선에 탄 사람들은 이민 공동체로서의 한인[조선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소설 속 한인[조선족] 밀항자들은 브로커들에게 엄청난 돈을 내고 밀항선에 자진하여 올랐다. 밀항선에 오르도록 그들의 등을 떠민 것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와 함께 금전의 압박이었다. 이 작품은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서 ‘정체성 찾기’라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중국 조선족 문학의 중요한 주제를 되찾음으로써 중국 조선족 문학이 나아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그러나 허련순의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는 중국 한인[조선족]의 문화적 정체성이 위기에 직면하게 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는 해답을 줄 수 없었다.
중국은 한국 열풍에서 돈을 얻고 모국인 한국과의 끈끈한 문화·경제적인 유대관계를 얻은 반면에 한인[조선족] 사회를 지탱해오던 생계의 기반으로서의 농업을 잃었으며 이에 따라 농촌에서 수많은 조선족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들을 잃었다. 도시화, 세계화를 추구하다가 농촌이라는 터전을 잃어버린 것이다. 농토, 농업, 농촌 마을, 마을학교는 중국 한인[조선족]의 농촌 공동체를 지탱하는 4대 지주(支柱)였고 농촌 공동체는 전반적인 중국 한인[조선족] 문화를 지탱하는 기반이었다. 박옥남은 이런 근원적인 상실의 비극을 많은 소설들을 통해 보여주었으며, 그 대표적 단편 소설이 「둥지」이다.
「둥지」는 조선족 마을의 붕괴를 한 가족의 해체를 통해 다루면서 가족의 해체가 마을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짐을 보여주었다. 조선족 마을 벽동툰에 살고 있는 진수네 아버지는 해외로 돈 벌러 가서 처음에는 집에 송금도 해오고 전화도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차츰 뜸해진다. 이에 실망한 진수 엄마는 화투판에 재미를 붙이더니 곧 마을의 촌장과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운다. 그 후 불륜 사실이 들통 나자 진수 엄마는 진수를 친정에 맡기고 역시 해외로 돈벌이를 떠난다. 이래저래 진수 또래의 학생들이 줄어드는 바람에 벽동툰의 마을학교는 폐교가 되고 만다. 마을의 한인[조선족] 아이들이 뛰놀던 벽동 소학교가 한족들에게 팔려서 양우리로 변하면서 “학교간판이 도끼날에 두 쪽으로 쪼개져 교실 창문우에 거꾸로 덧박”히고, “까치 두 마리가 백양나무 우듬지에 둥지를 틀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저희들끼리 재깔거리는 소리가 자냥스럽게 들려왔다”는 결말은 제목과 조응을 이루면서 상징성을 지닌다.
집도 잃고, 부모도 잃고, 학교도 잃은 시골소년 진수의 신세는 오늘날 한인[조선족] 농촌의 운명이다. 「둥지」는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백년 이상 중국 땅에서 견뎌온 한인[조선족] 농촌 공동체와 이 한인[조선족] 공동체가 영위하고 있었던 농경 문화를 상징하며, 소설에서는 아 ‘둥지’가 도시화, 세계화에 의해 풍비박산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둥지」에서는 둥지가 박살나면 성한 알이 없다고 말하며 중국 한인[조선족] 문화의 여러 ‘알’들이 무사할 수 있겠느냐는 여운까지 남기고 있다.
박옥남은 중국 조선족 농촌의 위기를 리얼하게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대책 마련을 위해서도 고심하였다. 그 대표적 작품으로 「내 이름은 개똥네」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이민 2세인 주인공 ‘나’가 중국의 공항에서 비행을 앞둔 장면에서 시작해 인천 공항에서 남편과 헤어져 귀국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주로 회상을 통해 서사를 진행시키면서도 중국과 한국에서의 ‘나’의 실존 상황을 교차시킴으로써 디아스포라로서의 소외감과 그로 인한 고민과 갈등, 방황을 묘사한다. 그러나 「내 이름은 개똥네」의 주제 의식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을 이끌어낸다. 한인[조선족]은 중국이나 한국에서 모두 소수자이지만 결국 자기가 뿌리를 내리고 살 곳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임을 자각하게 한다. 이 소설은 인천 공항에서의 다음과 같은 내면 독백으로 결말을 맺는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나라가 잘 가라고 손을 젓는구나. 그래, 가자! 집으로 가자! 내 집이 있고 내 아들이 있고 내 터전이 있는 그곳으로 가자! 대한민국이여, 잘 있어라, 아버지 아버지의 고향아, 잘 싸워라. 친구들아 잘 견뎌라. 개똥네야!”
‘나’ 같은 이민 2세에게 한국은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이고 중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적지 않지만 ‘내 집이 있고 내 아들이 있고 내 터전이 있는’ 뼈와 살에 와닿는 ‘내 고향’이요, ‘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나라’이다. 이 소설을 통하여 1930―40년대 안수길 등 재만 조선인 작가들의 ‘북향 정신(北鄉精神)’의 메아리를 듣게 되며 ‘북향 의식(北鄉意識)’으로의 회귀를 보게 된다.
두만강 유역이 경제적 가능성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한인[조선족]은 150년 이상 지켜온 자기의 집단 거주 구역과 그에 기반한 독특한 민족 문화를 지키기 위해, 세계화, 다문화 시대에 걸맞은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조선족 문학의 과제는 한인[조선족]이 바람직한 가치관과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여 한인[조선족] 공동체가 중국에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