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한자 無影塔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역사소설
작가 김용식
저자 생년 시기/일시 1925년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86년
편찬|간행 시기/일시 1987년
정의

1987년 출간한 김용식의 역사 소설.

개설

『무영탑』은 작가 김용식이 병사하기 전 발표한 마지막 소설이다. 소설집 『무영탑』에는 「무영탑」외에도 「보은단」, 「고리백정의 사위」 등 두 편의 중편 소설이 함께 실려 있다. 「무영탑」은 현진건의 동명 소설을 의식하여 쓴 듯, 아사달과 아사녀를 백제인이 아닌, 당나라 사람으로 설정하였다.

김용식은 1925년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출생하여, 1939년 강제이민으로 중국흑룡강성에 정착하였다. 1940년 소학 시절에 지은 시 「보름달」이 『만선 일보』에 발표되었으며, 해방 후 흑룡강성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문학창작을 병행하였다. 이후 시, 소설, 희곡 등을 꾸준히 발표하였고, 1955년 흑룡강성 치치할시 정치 협상 회의 정협 위원으로 당선되었다. 1958년 우파로 몰려 1961년까지 노동 개조를 하였고, 다시 1965년부터는 노동 개조 시에 얻은 중병으로 농촌에서 투병 생활을 하며 지냈다. 1978년 이른바 4인방의 타도 후 다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여 역사소설 『규중비사』를 발표, 전국 소수 민족 문학 창작상, 동북 3성 조문 우수 도서 1등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와 함께 조선 고전 문학 연구 사업에도 종사하여 여러 업적을 남겼다. 1986년 간염으로 연길에서 타계하였다.

구성

「무영탑」은 아사달과 아사녀의 연애 과정, 구화산에서 경주까지 아사녀의 여행기를 자세히 그리되, 아사달이 당나라인으로 신라로 떠나 아사녀와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마무리된다. 아사달의 이야기는 통일 신라에 대한 당나라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내용

석공 아사달은 당나라 왕석공의 아들로 구화산에서 13세의 아사녀와 만나 사랑을 나누던 중 신라로 떠나게 된다. 김대성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명공을 청한 까닭은 그가 깎던 돌을 서툰 신라 석공이 깨뜨려서 ‘기술이 앞선 대국의 명공’이 필요해서이다. 아사녀는 아사달이 약속한 3년이 지나고 5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그를 찾아 나선다. 아사녀는 구화산화성사의 주지승인 보문화상으로부터 신라로 가는 노정을 안내받고 강녕, 서주를 지나 황해를 건너는 도중 풍랑을 만난다. 겨우 불국사에 도착한 아사녀는 김대성에게 구화산화성사 주지의 쪽지를 보여주며 면회를 요청한다. 그러나 김대성은 면회를 시켜주지 않고 문지기는 아사녀에게 연못에서 기다리면 석가탑에서 일하는 아사달의 그림자를 만나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아사녀는 연못에 아사달의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자 연못에 빠져 자살한다. 아사달은 못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윗돌에 아내의 모습을 새긴다.

특징

「무영탑」은 문화 종주국으로서 중국의 우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에 한인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신라 문화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무영탑」은 한민족 역사상 불교 문화의 정화인 불국사 석가탑을 당나라 사람 아사달이 만든 것으로 각색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못하지만, 신라 호국불교의 정신과 아울러 신라 문화를 소개한 의미를 갖는다.

참고문헌
  • 김용식, 『무영탑』(료녕민족출판사, 1987)
  • 한명환, 「중국 조선족 역사소설의 탈식민주의의 특성 연구」(송현호 외, 『중국 조선족 문학의 탈식민주의 연구1』, 국학자료원, 2008)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