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天道敎 靑年黨 延吉 党部 |
|---|---|
| 분야 | 역사/근현대|종교/신종교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천도교 청년당 지부 |
|---|---|
| 설립자 | 염윤|김하영 |
| 설립 시기/일시 | 1928년 10월 25일 |
| 해체 시기/일시 | 1939년 4월 3일 |
| 최초 설립지 |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 있었던 천도교 청년당의 지방 당부.
천도교 청년당은 천도교의 청년 단체로 1919년 9월 2일 조직된 천도교 청년 교리 강연부, 1920년 4월 25일 명칭을 변경한 천도교 청년회의 후신으로 1923년 9월 2일 조직되었다. 1926년 1월 천도교가 신구 양파로 분리됨에 따라 천도교 청년당도 4월 3일 천도교 청년당[신파]과 천도교 청년 동맹[구파]로 나뉘었다가 1930년 12월 23일 천도교 신구 양파가 합동하자 1931년 2월 16일 신파측 천도교 청년당과 구파측 천도교 청년 동맹이 합동하여 천도교 청우당으로 통합되었다. 1932년 1월 천도교가 다시 신구 양파로 분화됨에 따라 천도교 청우당도 신파측 천도교 청우당과 구파측 천도교 청우당으로 각각 분화되었다가 같은 해 12월 23일 신파측 천도교 청우당은 천도교 청년당으로, 구파측 천도교 청우당은 천도교 청년 동맹으로 복원되었다. 이후 신파측 청년 단체로 활동한 천도교 청년당은 1939년 4월 3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체당했다. 해방 후인 1945년 9월 14일 천도교 청우당으로 재창당되었으며 1952년 12월 24일 천도교 청년회로 부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중국만주 일대에 있던 천도교 청년당 지방 당부는 1939년 4월 3일 해체된 이후 소멸되었다. 천도교 청년당은 1920년대 『개벽』·『조선 농민』·『어린이』 등 잡지 간행의 출판, 어린이날 제정 등 소년 운동·조선 농민사 설립과 농민의 이익 옹호를 위한 농민 운동·청년 운동·여성 운동·학생 운동·노동 운동·상민 운동 등 부문 운동을 통한 문화 운동, 그리고 오심당 등 비밀 결사를 조직하는 등 민족 운동을 주도하였다.
연길에는 1922년 5월 천도교 청년회 연길 지회가 조직되었으며, 염윤·김하영·이학석 등이 중심이 되어 1928년 10월 25일 조직된 연길 당부는 1929년 8월 임시 당원 대회에서 대표 이정발, 1930년 8월 24일 당원 대회에서 대표 김하영을 각각 선임하였으며, 1934년 4월 임명제로 전환되자 김하영이 연임하였으며 1936년 6월 박만수, 1937년 6월 김영환이 선임되어 해체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연길 당부는 당세 확장과 당원 훈련을 실시하였으며, 부속 사업으로 연길 제1 소학교 설립 운영하였다.
1939년 4월 3일 천도교 청년당과 함께 해체된 이후 중국의 특수한 상황에 의해 복원되지 못해 현재 연길 당부는 소멸되었다.
연길 당부는 천도교 삼도구 종리원의 청년 단체로 연길 지역에 천도교를 포교하고 민족 의식과 문화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