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延吉 孔敎會 |
|---|---|
| 분야 | 역사/근현대|종교/유교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유교 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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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 시기/일시 | 1899년 1월 |
1899년 만주 연길현에 설립된 유교 단체.
연길 공교회는 만주 연길현에서 활동한 공자 추대 및 독립운동 단체이다. 1899년 1월, 차의범 등 유교 계통의 인사들이 지방 관헌의 지지를 받고 국자가 양구성[지금의 연길시 소영향 공농촌 일대]에서 연길 공교회를 설립하였다. 1913년, 100여 명의 유교 인사들이 개산툰에 간도 공교회를 세웠으며 북경 공교당회의 분회가 되었다.
당시 연길 공교회의 회원은 3,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1916년 8월, 연길 공교회는 국자가 동쪽에 공자묘를 지었다. 1925년을 전후하여, 연길 공교회는 신파와 구파로 나뉘었다. 1926년 4월, 신파는 연길에 대동 학원을 설립하고 옛 서숙을 개혁하고 신학을 보급하였다. 그 해 9월 해산령을 받았고, 1930년 6월에 다시 회복하였다. 조선인 유교 인사는 간도 각 지역에 사숙을 두고 청소년들에게 사서오경을 가르치고 반일 사상을 고취시켰다. 1944년에는 간도에 문묘 7개와 1만 명으로 추정되는 신도가 있었으며, 해방 이후에 공맹 사상의 지도에 힘을 기울였다.
연길 공교회는 매년 음력 2월 6일과 8월 12일에 종교 집회를 거행하였는데, 술을 빚고 떡을 만들고 돼지를 잡아서 풍성한 제물을 차리고 공자를 기념하는 활동을 했다. 연길 공교회의 책임자는 선거로 선출되었다. 연변의 ‘팔장의(八掌議)’는 이런 선거를 거쳐 선출된 8명 장의(掌議)를 말한다. 연길 공교회는 사숙을 꾸려 반일 사상을 선전하여 조선족 인민들의 반일 투지를 불러일으키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작용역할을 하였다. 1916년 8월, 국자가 동쪽 편에 공자묘를 세울 때 경비의 부족으로 지방 정부의 보조를 받았으며 낙성된 후 지방 정부의 관리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에 한인 신자들의 증가와 의연금이 많아짐에 따라 공자묘를 다시 한인 유교 인사들의 관리 밑에 두게 되었다. 유교는 용정·연길·화룡·두도구 등에 향교(鄕校)를 두고, 농촌에서 장의 등 교직원을 선거하여 문묘(文廟)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동시에 사숙, 명륜(明倫) 학교 등을 두어 교세를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