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延吉 절간 |
|---|---|
| 분야 | 역사/근현대|종교/불교 |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사찰 |
|---|---|
| 창건자 | 왕우갑 |
| 최초 건립지 | 국가자 |
| 현 소재지 | 연길시 |
1936년 왕우갑 등이 길림성 연길 지역에 세운 사찰.
1924년 7월 21일, 국자가 동쪽 거리에 있는 민회 사무소를 일본 영사분관 서쪽에 옮겨오게 하고, ‘신시가 번영회’를 통하여 민가의 사용 및 모든 권리를 번영회에 넘겨주었다. 신시가에는 웃 개방지[上開放地]와 아랫 개방지[下開放地]가 생겼다. 지금의 연길시 조양 소학교 뒤쪽에 순신동이라 부르는 조선인 마을이 생겨나고 조양 소학교 자리에 연길 절간이 수건되었다.
근대 연길의 불교 세력은 크게 두 파벌로 나뉜다. 하나는 귀주사와 대각사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 불교계의 세력이었다. 다른 하나는 정토종과 선종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불교계의 세력이었다. 귀주사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인 불교는 교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점차 우위를 점하였으며 조선인들이 집거한 용정·도문·팔도구 등 지역에 활동 기지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경제적 원인과 기타 종교 세력의 확장 및 당시 사회 문화적 풍토 등 원인으로 연길 절간은 상승세를 이어 가지 못하였다.
1945년 이후 연길 절간은 조선 의용군의 주둔지로 이용되었다. 또한 정률성이 연길 절간을 교육장으로 활용하여 국공 내전에 필요한 핵심 요원 양성 기지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