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모

한자 冉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길림성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문무 관인
성별
정의

중국 동북지역에 있었던 고대국가인 고구려의 귀족.

개설

북부여대형 염모는 고구려의 귀족이다. 주몽과 함께 북부여에서 내려온 부여계 유민의 후손으로, 고국원왕(故國原王)대에 북부여대형(北夫餘大兄)으로서 모종의 반역사건을 해결하고 모용선비(慕容鮮卑)가 침공했을 때 활약을 하여 공을 세웠다.

가계

광개토왕대에 령북부여수사(令北夫餘守事)를 지낸 모두루(牟頭婁)의 선조이다.

활동 사항

염모는 중국길림성 집안시 태왕향 하해방촌(吉林省 集安市 太王鄕 下解放村)에 있는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에 적힌 묵서명 묘지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묵서에 의하면 염모의 조상은 주몽과 함께 북부여에서 내려와 고구려 건국에 참여했다. 염모고국원왕대에 일어난 모종의 반역사건을 해결했고, 346년 모용선비(慕容鮮卑)가 세운 전연의 군대가 북부여 지역[현재의 길림(吉林)]으로 쳐들어왔을 때 전공을 세웠다. 염모의 공에 힘입어 그의 집안은 이후 대대로 관은(官恩)을 입게 되었다. 후손인 모두루(牟頭婁)는 그 음덕으로 광개토왕(廣開土王)대에 령북부여수사(令北夫餘守事)로 임명되어 북부여 지방을 통치하는 지방관이 되었다.

한편 모두루묘의 주인공에 대해 학계에서는 의견이 나눠져 있다. 1935년 이 무덤을 처음 조사할 때 ‘대사자모두루□□노객(大使者牟頭婁□□奴客)’이라는 제수가 있고, 묘지 내용에도 모두루란 이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므로 이 무덤을 ‘모두루총’이라고 이름했다. 그런데 중국학자 노간(勞幹)은 모두루가 노객을 자처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주목하여 ‘염모’가 무덤의 주인공이고 노객은 그의 가신이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모두루총’이라 하지 않고 ‘염모총(冉牟塚)’혹은 ‘염모묘’라 불러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모두루염모의 노객이 아닌, 광개토왕의 노객을 자처한 것으로 보아 모두루묘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참고문헌
  • 韓國古代社會硏究所編,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Ⅰ(高句麗·百濟·樂浪篇, 1992)
  • 今西龍, 「高句麗人牟頭婁の墓と墨書の墓誌」(『書苑』1-8, 1937)
  • 池內宏·梅原末治, 『通溝』下(日滿文化協會, 1940)
  • 勞幹, 「跋高句麗大兄冉牟墓誌兼論高句麗都城之位置」(『歷史語言硏究所集刊』11, 1944)
  • 박시형,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사회과학원출판사, 1966)
  • 佐伯有淸, 「高句麗牟頭婁墓誌の再檢討」(『史朋』7, 1977)
  • 田中俊明, 「高句麗の金石文-硏究の狀況と課題-」(『朝鮮史硏究會論文集』18, 1981)
  • 武田幸男, 「牟頭婁一族と高句麗王權」(『朝鮮學報』99·100 합집, 1981)
  • 盧泰敦, 「夫餘國의 境域과 그 變遷」(『國史館論叢』4,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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