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乙支文德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대장군 |
|---|---|
| 성별 | 남 |
| 활동 시기/일시 | 612년 |
고구려 제25대 영양왕 때의 대장군.
612년(영양왕 23) 수 양제(隋煬帝)는 113만 3800명을 24로군으로 나누어 편성하고 직접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수 양제는 고구려의 행정 도시이자 요동 지역 방어 사령부인 요동성(遼東城)[지금의 요양]을 공격하였다. 공방전이 계속되자, 수 양제는 우중문(于仲文)·우문술(宇文述)에게 30만 5000명의 별동대를 주어 고구려의 서울인 평양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황해 북부를 횡단하여 대동강 상륙 작전을 벌인 수군과 협동 작전을 벌이는 전략이었다.
별동대가 압록강 서쪽에 집결하였을 때, 을지문덕은 거짓으로 항복하고 적의 진영으로 들어갔다. 우중문과 우문술을 만나고, 군량미 부족 등 수나라군의 약점을 파악한 후에 신속하게 탈출하였다. 그 후 유인 작전을 써서 전투를 벌일 때마다 일부러 패배하면서 적군을 내륙 깊숙이 끌어들였다. 이미 내호아(來護兒)가 이끄는 수군은 궤멸당한 후라 수나라 육군은 군수 물자도 부족하고 전의를 상실한 뒤였다. 을지문덕은 퇴각하는 수나라 군대를 살수(薩水)[청천강설, 압록강설, 대양하설 등이 있다]에서 수공(水功)으로 급습하여 전멸시켰다. 수나라는 장군인 신세웅(辛世雄)이 전사하고, 불과 2,700명만 생존하였다. 이것이 ‘살수대첩’이다.
을지문덕의 저술로는 유명한 희롱조의 오언시 1편이 전한다. 시의 내용은 “신통한 계책은 천문을 헤아리며 묘한 꾀는 지리를 꿰뚫는구나. 싸움마다 이겨 공이 이미 높았으니 족한 줄 알아서 그만둠이 어떠하리(神策究天文妙算窮地理戰勝功旣高知足願云止)”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