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高德武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왕 |
|---|---|
| 성별 | 남 |
| 활동 시기/일시 | 699년 |
| 몰년 시기/일시 | 718년 |
고구려 멸망 후 요동 지역에 소고구려를 세우고 왕이 된 인물.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보장왕을 비롯한 왕족과 귀족 군인 및 백성들은 당나라로 끌려갔다. 그러나 많은 유민들이 요동 지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신라와 당 간에 벌어진 전쟁과 긴장 관계, 거란의 발흥과 실패, 발해의 건국, 돌궐 및 말갈족의 부상 등으로 요동 지방은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태였다. 당나라는 안동 도호부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으므로 위기 의식을 느꼈다. 이에 당은 안동 도호부를 안동 도독부로 격하시키면서 699년에 고덕무를 도독으로 임명하여 유민들을 다스리게 만들었다. 이는 전형적인 기미 통치 방식(羈糜統治方式)이다. 하지만 고덕무는 오히려 유민들과 함께 소고구려국을 세워 당에 대항했다. 고덕무는 718년에 죽었는데, 이후 소고구려는 발해선왕에 의해 발해에 흡수될 때까지 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존속하였다. 요동 지방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도 고구려 유민들이 독자적인 방식으로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