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故國川王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왕 |
|---|---|
| 성별 | 남 |
| 활동 시기/일시 | 176년(신대왕 12) |
| 활동 시기/일시 | 179년 |
| 활동 시기/일시 | 184년 |
| 활동 시기/일시 | 180년 |
고구려 제9대 왕.
고국천왕은 176년(신대왕 12)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신대왕이 죽자 백성의 지지를 받아 즉위하고, 홀본(忽本)에 있는 시조묘에 제사를 올렸다. 184년에 후한의 요동 태수가 쳐들어왔을 때 고구려군이 패하자, 친히 정예 기병을 이끌고 나가 좌원(坐原)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80년에 제나부(提那部)우소(于素)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여 지지 기반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후에 외척 세력이 발호하여 국정을 문란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반란을 일으켜 궁성을 공격했는데, 고국천왕은 이를 강력하게 진압하였다.
또한 나라를 개혁할 목적으로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압록곡(鴨綠谷)의 좌물촌(左勿村)에 사는 을파소(乙巴素)를 재상인 국상(國相)으로 임명했다. 고국천왕은 을파소와 힘을 합쳐 가난한 사람들과 노소과부와 홀아비 등 어려운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진대법이었다. 진대법은 매년 춘궁기에 백성들의 처지에 맞게 양식을 빌려 주었다가 수확기에 거두어들이는 일종의 복지 사업이었다. 고국천왕 때에 이르러 왕위 계승이 비로소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정착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