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피구 고성

한자 夾皮溝 古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백산시 임강시 육도구향 협피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유적
양식 성곽
현 소재지 길림성 임강시 육도구향 협피촌
원소재지 길림성 백산시 육도구진 협피촌
정의

중국(中國) 길림성(吉林省) 임강시(臨江市) 육도구향(六道溝鄕) 남쪽의 협피촌(夾皮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성.

위치

협피구 고성화피전자 고성에서 상류쪽으로 10㎞ 지점에 있으며, 본래 임강-장백(長白) 도로가 남벽 외곽을 지나갔으나, 2007년에 도로를 확장하여 포장하면서 남벽 안쪽으로 지나가게 되었다. 고성의 북벽에서 불과 20m 떨어진 거리에 압록강이 흐르고 있으며, 그 왼쪽으로는 북한 지역이다.

형태

협피구 고성은 동서 폭 50m, 남북 길이 100m로 성곽의 전체 둘레는 약 280m이다. 평면은 불규칙한 장방형이고, 동·북·서 3면에 산돌과 깬돌을 허튼쌓기로 층층이 쌓아 성벽을 축조하였다. 성벽은 북쪽이 높고 남쪽으로 갈수록 낮아져 지표에 닿아 평평하게 되며,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남쪽에는 성벽을 축조하지 않았다.

1960년대 조사 당시 이미 성곽 내부에 성곽과 비슷한 높이로 흙이 쌓여 있었는데, 성으로 흙이 유입될 만한 하천이나 계곡이 없으므로 자연적인 퇴적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혼강시지(渾江市志)에 따르면, 본래 성문이 4개 있었고 그 형적을 쉽게 판별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2007년 당시에는 성문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출토 유물

1960년대에 석제 창, 석제 화살촉, 토기조각, 철제 화살촉, 동전 등이 출토되었다. 1987년에는 니질회색토기(泥質灰陶), 사질갈색토기편(夾砂褐陶片), 돌칼 조각 등을 채집했다.

현황

20세기 전반에 만주지역을 점령한 일본군이 성 돌을 가져다 공사를 하여 성곽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성곽 내부는 2007년 당시 채소밭이었고, 민가도 한 채 있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1980년대 조사 당시 동북의 북단, 북벽의 동단, 서벽의 남단의 성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2007년에도 북벽 동단부는 성벽 축조 상태를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2007년에 임강-장백 도로를 확장·포장하면서 성곽 남단부와 동벽, 서벽의 남단도 도로에 덥혀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동벽은 압록강으로 나아가는 소로(小路)로 인해 성벽이 상·하단으로 분리되었고, 북벽 서반부는 퇴적으로 인해 성벽의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서벽의 북반부는 성벽 자체가 유실되었다.

의의와 평가

협피구 고성은 압록강 수로의 교통요지를 공제하던 수운 역참의 기능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집안(集安)의 장천(長川) 고성, 양민(良民) 고성, 임강 화피전자(樺皮甸子) 고성, 협피구 고성, 동마록포자(東馬鹿泡子) 고성 등이 압록강 강변을 따라 일정 간격으로 분포하는데, 모두 압록강 연안 충적대지의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 중 화피전자 고성, 협피구 고성, 동마록포자 고성은 유로(流路)가 심하게 곡류(曲流)하는 압록강 상류에 밀집 분포하고 있다. 이로 보아 고구려가 기존의 선착장 시설이 없는 곡류 지점 부근에 성곽을 조영하여 이 일대 수로(水路) 전체를 관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협피구 고성은 규모가 작고 주변에 별다른 유적이나 배후지도 없다는 점에서 수운 역참의 기능만 수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修委員會, 『渾江市文物志』(1984)
  • 고구려 연구회 편,『고구려 산성 연구』(학연 문화사, 1999)
  • 孙仁杰·迟勇·張殿甲, 「鴨綠江上流右岸考古調査」( 『東北史地』2004-5, 2004)
  • 여호규, 「鴨綠江 중상류 연안의 高句麗 성곽과 동해로」( 『역사문화연구』29, 2008)
  • 동북아역사재단 편,『고구려성』(동북아역사재단, 2010)
  • 여호규·강현숙·백종오·김종은·이경미·정동민,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유물Ⅲ 압록강 중상류3 통화-백산·임강-장백』( 동북아역사재단,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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