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피구 고분군

한자 秋皮溝 古墳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추피구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구려 고분군
양식 적석총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2년 12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3년 4월
소재지 길림성 통화시집안시 추피구촌
정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추피구촌 동북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

위치

추피구 고분군은 길림성 집안시 청석진(靑石鎭) 추피촌(秋皮村) 동쪽 1㎞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추피구 고분군은 1962년 12월 길림성 박물관에서 조사를 실시하였다. 당시 조·중 합작의 운봉댐 건설을 위해 이 지역을 조사할 때 다수의 고분을 확인하였으나 1965년 댐 건설로 대다수 수몰되었다. 1983년 4월 집안현 박물관에서 다시 조사했을 때 3기의 적석총을 확인하였다.

형태

추피구 고분군은 모두 8개의 묘구로 분류되었다. 추피구 고분군은 추피구하에서 동북쪽으로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6㎞ 구간에 이르며, 압록강을 거슬러 2㎞ 상류로 올라가는 길에도 존재한다. 묘응구(猫鷹溝) 묘구에는 53기의 묘가 있다. 북차(北岔) 묘구에는 9기, 두도남천문(頭道南天門) 묘구에는 24기, 협란자구(夾蘭子溝) 묘구에는 64기, 소추피구문(小秋皮溝門) 묘구에는 38기, 대음자(大陰子) 묘구에는 154기, 소만구(小彎溝) 묘구에는 57기, 대만구(大彎溝) 묘구에는 70기의 분묘가 분포해 있었다. 모두 합해 469기이다.

현황

추피구 고분군은 1965년 운봉댐 건설로 인해 유적 대부분이 수몰되었다.

의의와 평가

추피구에는 다수의 고분군이 군집하고 있다. 해당 고분의 특징을 살펴보면 일반민들의 고분군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고분군이 존재했을 당시 추피구 지역은 다수의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인구 밀집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참고문헌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 孙仁杰·迟勇, 『集安高句麗墓葬』(香港亞洲出版社, 2007)
  • 강현숙·백종오·여호규,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유물Ⅰ』(동북아역사재단,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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