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長川 1號 古墳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청석진 장천촌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고분 |
|---|---|
| 양식 | 봉토 석실분 |
| 크기 | 각 변의 길이 약 18m, 높이 5m |
| 문물|보호단위등급 | 성급 문물 보호 단위(省級文物保護單位)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0년 8월 |
| 소재지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향백향 장천촌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청석진 장천촌(長川村) 북쪽 장천 묘구에 있는 고구려고분.
장천 1호 고분은 길림성집안시의 동북쪽 25㎞ 거리에 있는 황백향 장천 고분군의 2단 대지 위에 위치한다. 장천은 동서로 긴 하곡 분지로 건구하(乾溝河)가 분지의 중앙을 경유하여 남쪽으로 압록강에 유입되고 있으며, 이 건구하 양안(兩岸)을 따라 100여 기의 고구려고분이 밀집되어 고분군을 이루고 있다.
고분군의 북쪽은 높은 산에 의지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약 70m 거리에 집안-청석(靑石) 간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장천 1호 고분은 장천 고분군 2단 대지의 정중앙에 위치하며 서쪽으로는 후림자구(后林子溝)를 사이에 두고 장천 2호 고분과 마주보고 있다.
장천 1호 고분은 봉토 석실묘로 외관은 절두방추형(截尖方錐形)이고, 규모는 각 변의 길이 약 18m, 높이 5m이다. 연도와 전실, 이음길[용도(甬道)], 후실로 구성되어 있는 쌍실묘이다. 연도의 방향은 서향(233°)으로 밑바닥에 석재를 깔아 평평하게 하였으며, 정상에 방형의 거석을 덮었다.
전실은 깊이 2.37m, 폭 2.9m, 높이 1.89m의 장방형(長方形) 평면으로, 3층의 말각[모줄임]에 3층의 고임으로 쌓은 조정(藻井)이다. 동벽 중앙에 이음길이 있어서 후실로 연결된다. 이음길은 길이 1.12m, 폭 1.34m, 높이 1.62m이다.
후실은 정방형에 가까우며, 폭 3.20m, 길이 3.30m, 높이 3.05m이다. 서벽 중앙에 이음길이 통과하고 그 나머지 3벽의 1·2층 석재에 각각 7~8개의 못 구멍이 있는데 쇠고리를 걸어 장막을 설치하기 위한 것이다. 조정은 5층의 평행 고임이며, 바닥에 십자 대각선이 새겨져 있다. 후실 남북에 2개의 관대가 놓여 있다.
전실과 후실의 네 벽의 천정, 이음길의 양 벽, 석문 정면과 관대 표면에 모두 채색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벽화의 주제는 생활 풍속과 장식 무늬이다. 특히 벽면에 직접 1차로 연음(宴飮), 수렵(狩獵), 잡기(雜技), 가무(歌舞), 예불(禮佛), 비천(飛天), 화생(花生)등 채색 풍속화를 그린 후 백회를 칠하고 다시 2차로 사신(四神) 등의 도상을 그린 것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1차와 2차 벽화는 시간상 그리 멀지는 않으며, 1차 벽화는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다. 후실 천정에는 막음돌에 여러 가지 별자리와 해와 달 등을 그리고 있는데 중앙에 ‘북두칠정(北斗七靑)’이라는 4글자를 써 놓았다.
장천 1호 고분은 일찍 도굴을 당해 발굴 조사 시 전실 서남 모퉁이의 흙 속에서 고골(股骨)[넓적다리뼈] 조각이 발견되고, 후실 남쪽 관대(棺床) 위에서 목관 조각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목관 조각은 표면에 삼베를 대고 밖에 옻칠을 한 뒤 붉은색 연속도안을 그렸으며, 중간에 연꽃과 연잎으로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