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五道嶺溝門 古墳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길림성 집안시 마선향 태평촌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고분 |
|---|---|
| 양식 | 적석묘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8년 4월 24일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8년 5월 31일~6월 3일 |
| 소재지 | 집안시 마선향 태평촌 |
중국(中國)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 마선향(麻線鄕) 태평촌(太平村) 오도령(五道嶺)에 있는 고구려 적석묘.
오도령구문 고분은 1978년 4월 집안시 태평대대(太平大隊)오도령구문(五道嶺溝門) 도로 보수 중 지표에서 3m 높이의 산비탈에서 11건의 청동기와 철기 유물을 발견하여 집안현 박물관에 보고하였고, 박물관에서 곧 현장 조사를 실시하여 유물을 회수하였다. 그러나 1차 조사에서 고분은 발견하지 못했고, 다시 1978년 5월 31~6월 3일까지 2차 조사를 실시하여 청동단검 출토 지점에서 1기의 적석묘를 확인하였다.
오도령구문 고분은 중국학계에서 방단계제적석총(方壇階梯積石塚)으로 보는 설(集安縣文物保管所, 1981)과 계장적석묘(階墻積石墓)로 보는 설(耿鐵華·林至德, 1984; 魏存成, 1987), 창석류(淌石流)를 이용한 적석묘로 보는 설(張雪岩, 1993 및 1995)로 나누어져 있다. 창석류는 산비탈 위나 암반 아래 움푹 파인 곳에서 산돌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려 점점 산비탈 아래 퇴적된 것을 지칭한다. 창석류는 가장 이른 적석묘의 하나이다. 돌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항상 아랫면에 큰 돌을 놓아두는 것이 현재 가장 이르고 가장 간단한 계장이다. 한국학계에서는 이를 석퇴유적으로 보는 설(여호규, 2011)과 제단시설로 보는 설(오강원, 2012)이 있다.
오도령구문 고분의 평면은 정방형이고 한 변의 길이는 14m 이고 잔존 높이는 약 80㎝이다. 조사 당시 지면에는 이미 무덤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 고분은 산비탈을 따라 조성되었는데 산의 경사도는 25〬로 동북이 높고 서남이 낮다. 높은 동북 면은 계단이 없고, 경사가 낮은 서남 면은 파괴되었지만 3단의 불규칙한 계단이 남아 있다. 각 계단은 돌 몇 개만 남아 있어 명확하지 않다. 3단 계단은 무덤 서남부를 받쳐 분구의 돌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고 있다. 잔존 현상을 통해 추측하면 정면 한 변 길이는 14m이고, 각 계단은 1.3~1.85m씩 들여쌓기를 했다. 북면은 산을 따라 돌을 축조하였으며, 남면은 파괴가 심각한 상태로 3층의 계단이 남아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오도령구문 고분의 북변 5m, 동변 21m 되는 지점에서 청동기 11건[청동단검, 칼집 끝장식, 동제 창(3건), 동제 도끼, 부채모양 도끼(4건), 잎맥문 동제 거울]과 철기 2건[도끼날, 철제 화살촉]이 발견되었다.
오도령구문 고분은 1978년 청동기 발견으로 조사를 진행하였으나 고분의 흔적은 전혀 발견하지 못하다가, 1978년 5월 이후 2차 조사에서 청동단검 출토 지점에서 적석묘를 확인하였다. 1995년 이후 고분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고 보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