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小高麗墓溝 古墳群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유림진 대주선구촌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고구려 고분군 |
|---|---|
| 양식 | 기단 적석총|봉토 석실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17년 6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2년 4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3년 5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
| 소재지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서쪽 유림진 |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 유림진(楡林鎭) 대주선구촌(大朱仙溝村) 서남쪽 소고려묘구문(小高麗墓溝門)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
소고려묘구 고분군은 집안시 서쪽 유림진 대주선구촌 서남쪽 1.5㎞, 대전자촌(大甸子村) 동쪽 1.5㎞ 거리에 있는 소고려묘구문의 대지 위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약 300m에 집단 도로[集丹公路]가 있으며, 남쪽으로 대고려묘자 고분군이 있다. 고력자산(高力子山)의 서쪽 기슭 논밭 가운데 분포되어 있다.
소고려묘구 고분군은 1917년 관야정(關野貞) 등이 참여한 조선 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발굴되었다. 적석총(積石塚)과 봉토분(封土墳) 등 약 10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는데 전반적으로 대고려묘구 고분군(大高麗墓溝古墳群)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1962년 집안 문물보사대(集安文物普査隊)가 조사를 진행하여 20여 기의 고분을 확인하였고, 1983년 집안 문물보사대가 다시 조사하여 측량과 도면 작성, 편호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이미 대부분의 고분이 파괴되고 17여 기 정도만 잔존한 것을 확인하였다. 2005년 다시 조사를 진행하였는데,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은 9기이며 나머지는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소고려묘구 고분군의 기단식 적석총(基壇式積石塚) 7기는 평면이 방형이며 한 변의 길이는 5~10m, 높이는 1~1.5m이다. 봉토 석실묘(封土石室墓) 2기는 직경이 5m, 높이 1.5m 전후이다. 나머지 8기는 심하게 파괴되었다.
소고려묘구 고분군은 1983년 조사 당시 대부분의 고분이 파괴되고 17여 기의 고분만 확인되었으며, 지속적으로 고분의 파괴가 진행되어 2005년 조사 당시 형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9기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