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大高麗墓子 古墳群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유림진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고구려 고분군 |
|---|---|
| 양식 | 적석총, 기단 적석총, 기단 석실 적석총, 계단 적석총, 무기단 석실 적석총, 봉토 석실분 |
| 크기 | 600m 정도 |
| 문물|보호단위등급 | 시 문물 보호 단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17년 6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2년 4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3년 5월 |
| 소재지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유림진 |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 서남쪽에 위치한 유림하(楡林河) 좌안(左安)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
대고려묘자 고분군은 1917년 6월 조선 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에서 관야정(關野貞)을 중심으로 최초의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약 118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1962년 4월 길림성 박물관 중심으로 2차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이때는 약 113기의 고분을 확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3차 발굴은 1983년 5월 집안현 박물관의 집안 문물보사대에서 다시 조사를 시행하여 측량과 도면 작성을 하고 번호를 붙였는데, 보존이 양호한 고분은 59기 정도만 파악되고 있어 많은 고분이 파괴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고분의 분포 범위는 1962년과 같았다.
적석총[積石石壙墓: 16기], 기단 적석총[階段積石石室墓: 4기], 기단 석실 적석총[有壇石室墓: 3기], 계단 적석총[階段積石壙室墓: 3기], 무기단 석실 적석총[封石槨室墓: 10기], 봉토 석실분[封土槨室墓: 23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적석총에 비해 봉토분이 비교적 규모가 작다. 1962년 조사 당시 이미 일부의 고분이 교란되어 있었는데 적석총인 M31과 M21은 정리 당시 인골 조각편이 발견되었으며, 봉토분인 M43은 두골과 지골(肢骨)이 발견되었다. 1983년에는 59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이 중 적석총은 16기로 한 변의 길이는 4~8m이고, 기단 적석총은 4기이며 변의 길이는 대부분 6~11m이다. 기단 석실 적석총은 3기로 한 변의 길이는 8~10m사이가 많다. 계단 적석총은 3기로 형태가 비교적 크며 고분군 중앙의 서쪽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무기단 석실 적석총은 10기로 쌍실묘가 많은데, 한 변의 길이는 4~8m사이 이다. 봉토 석실분은 23기인데 주로 묘군의 중앙에 분포하며 한 변의 길이는 4~8m가 많다.
대고려묘자 고분군은 1962년 조사 당시 이미 일부가 교란되었으며, 1983년 조사 때에도 적석총은 후대에 다시 돌을 올린 것이 많아 대부분 원래 형태를 잃었으며, 기단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다. 봉토분 역시 봉토가 상당 부분 유실된 것이 많았다. 1917년 조선 총독부 조사 때 118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던 것에 비해 1983년 확인된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고분은 59기로 대폭 감소하였다. 2007년 무렵에는 왕복 2차선 도로가 고분군의 일부를 관통하여 일부 고분이 잘려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고려묘자 고분군은 계층과 시기가 다른 적석총과 봉토분이 섞여 있으며, 고분 형태가 다양하다. 묘군의 규모와 고분 형태로 볼 때 고구려 시기의 중요한 묘군 중 하나이며 비교적 긴 기간 동안 계속해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 지역이 집안현 서남부의 교통 요지 중 하나로 고구려 시대에 비교적 중요한 교통 요지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