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大輔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 유형 | 제도/관직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고구려와 신라가 초기에 설치한 관직명.
대보는 고구려·신라가 초기에 설치한 관직이다. 국정을 총괄하는 재상의 기능을 수행했으며, 고구려·신라만 있었다.
고구려는 서기 3년(유리왕 22)에 왕이 사냥을 나가 5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대보인 협보(陜父)가 왕에게 정사에 힘쓸 것을 간하다가 파직당하였다.
신라는 2대인 남해 차차웅(南解次次雄) 때의 탈해(脫解)와 4대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 때의 호공(瓠公)이 대보였다. 사로국(斯盧國) 왕실이 석씨(昔氏) 부족과 결탁하면서 이러한 관직이 생겨났으나, 탈해 이사금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라의 중대한 일은 이벌찬(伊伐飡)·이찬(伊飡) 등이 나누어서 대보의 임무를 계승하였다. 이것은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왕 중심의 국가로 발전함에 따라 관료화가 진행되면서 정치·행정·군사권이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대보는 국왕의 측근으로 국정을 총괄했다.
좌보(左輔)와 우보(右輔)로 분화되었다가 다시 국상(國相)으로 합쳐졌다.